[사설] 대한항공의 얼렁뚱땅 해명이 공분 키웠다

입력 2014-12-15 02:52 수정 2014-12-15 10:5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의 파문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확산되고 있다. 당시 조 회장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의해 비행기에서 내쫓긴 박창진 사무장과 목격자인 일등석 승객이 12일과 13일 잇달아 조 전 부사장의 폭언·폭행 사실을 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사무장과 승무원에 대해 폭언·폭행이 없었다는 대한항공 측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명명백백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현재로선 사무장과 승객의 발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 대한항공 측의 거짓 해명 논란으로까지 비화된 상황이다.

박 사무장이 12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이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하면서 서비스 매뉴얼 케이스의 모서리로 손등을 수차례 찔러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또 여승무원과 자신을 무릎 꿇린 채 모욕을 줬고 삿대질을 하며 조종실 입구까지 밀어붙였다고 증언했다. 이런 모욕감과 인간적 치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사건 이후에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와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의 욕설과 폭행에 대해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라며 발뺌하고 있다.

제삼자의 진술이 없었다면 진실게임 양상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의 바로 앞자리 일등석에 앉아 있던 박모씨가 13일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박 사무장의 폭로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증언함에 따라 대한항공 측의 거짓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뒤늦게 14일 여승무원과 사무장의 집을 찾아가 사과 쪽지를 남겼으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슈퍼 갑질’의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게 도리다. 대한항공 측의 거짓 진술 강요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는 회사와 오너 일가의 부도덕한 작태다.

대한항공이 애초부터 진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후처리를 제대로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확산된 근본 원인은 오너 일가의 제왕적 경영에 있다. 회사를 소유물로, 직원을 머슴으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오너 일가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그러니 소신 있는 직언을 통한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특히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재벌 오너 3세들의 안하무인이 국민을 분노케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를 폭행해 입건된 적도 있고, ‘트럭 운전사 맷값 폭행’이나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등으로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오너 일가들이 ‘조현아 파문’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적 오너 문화의 병폐를 고치고 조직문화를 선진화하는 등 기업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또한 후계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는 인성교육과 리더십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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