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정원의 김기창 화백… 파리 호텔의 장미희…

입력 2014-12-15 02:26
프랑스 사진작가 로랑 바르브롱이 1970, 80년대 촬영한 한국 유명 인사 사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배우 장미희(83년 9월), 운보 김기창 화백(81년 5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76년 10월), 마라토너 손기정(81년 11월)의 흑백 사진이 아련한 추억을 전한다. 갤러리나우 제공
외국인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인의 모습을 40년간 찍어온 프랑스 남자가 있다.

사진작가 로랑 바르브롱(한국명 박로랑·63·사진)이다. 로랑은 한국을 사랑하고 태권도를 좋아한다.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아내와 며느리도 한국인이다.

그가 1970, 80년대 촬영한 한국인 사진을 서울 종로구 인사길 갤러리나우에서 ‘파리 코레안’이라는 타이틀로 16일까지 선보인다.

그가 만난 한국인은 문화예술가들이 많다. 빵모자를 쓴 화가가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고 벤치 끝에 앉은 한 부인이 곁눈질을 하고 있다. 81년 5월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이 모네의 정원이 있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서 스케치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83년 9월 파리의 한 호텔에서 찍은 영화배우 장미희의 젊은 시절 모습이 풋풋하다.

76년 10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81년 11월 베르사유 궁 앞에서 선글라스를 쓴 노신사가 달리고 있다.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이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손기정은 마라톤을 하듯 러닝을 한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이 허공에 손짓하는 포즈는 77년 8월 촬영했다.

로랑은 프랑스에 태권도를 보급한 이관영 사범에게 18세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파리에 거주하거나 잠깐 들르는 한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판화가 송번수, 조각가 문신, 미술평론가 이경성, 화가 이만익, 건축가 승효상, 사진작가 김중만,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등 100여명의 한국인을 사진에 담았다. 이 가운데 이번에 43점을 공개했다.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로랑은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해 표정을 재미있게 찍을 수 있다”며 “연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촬영한 사진에는 당시의 추억과 인연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키워드는 ‘재미’와 ‘마음’이다. 로랑은 “재미가 없으면 찍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올 때 카메라를 든다”고 강조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