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예술 후원의 진화 어디까지] 자동차 탄 미술, 상생의 쾌속질주

입력 2014-12-15 02:01
자동차 체험관이자 미술관을 표방한 현대모터스튜디오에 전시된 영국 작가그룹 UVA의 미디어작품 ‘움직임의 원리 2’. 5개의 원형 조형물과 미디어월(Wall) 작품을 통해 운전이 주는 ‘움직임+리듬+패턴’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제공
밖에서 본 현대모터스튜디오 전경. 빨간색 소나타를 작품처럼 층층이 매달아 놓은 게 인상적이다.
강렬한 '레밍턴 레드'의 신형 LF쏘나타를 뒤집어 윗면이 밖에서 보이도록 창에 줄지어 매달아 놓았다. 세련된 유리 건물 밖에서 보면 작품 같다. 서울 강남의 도산대로사거리에 현대자동차가 올해 5월 개관한 '현대모터스튜디오'는 국내 최초의 자동차 브랜드 체험관이다. 미술관과 체험관을 결합했다는 이곳은 외관에서부터 갤러리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자동차를 주제로 한 세계적인 작가의 예술작품도 전시 중이다. 교차로 각 코너에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수입차 대리점이 경쟁하듯 값비싼 자동차를 전시·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아트 마케팅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기부에서 탈피해 업종과 관련된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기업 이미지 홍보를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주제로 예술작품을 만들다=현대모터스튜디오 1층은 갤러리와 다를 바 없다. 들어서면 흰색의 원형 조형물 5개가 설치돼 있는데 각각의 원판에는 빨강, 파랑 등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줄무늬가 끊임없이 돌아간다. 회전 속도를 관객이 조정할 수 있다. 원형 조형물 위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 월(Wall)에는 몬드리안의 추상작품 같은 격자무늬 영상물이 수평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그 속도가 느려 흰 구름이 흘러가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지난 11일부터 전시 중인 영국의 세계적 작가그룹 UVA(United Visual Artists)의 미디어아트 작품 ‘움직임의 원리 2’이다. 운전은 ‘움직임+리듬+패턴’이 운전자의 무의식 속에 합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 전시장 안에 흐르는 ‘명상 음악’도 작품의 일환이다.

유리벽 너머로 차량과 사람이 끊임없이 오가는 게 보인다. UVA 멤버인 뱀 크로크니에트는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주변 환경까지 작품 요소로 여겨 제작했다”며 “길거리의 복잡함과 작품이 주는 명상성에서 대조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이대형 차장(아트 디렉터)은 “작가에게 주제만 던져주고 모든 작업은 작가가 알아서 했다”며 “지원은 하되 상상력의 독립성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예술 후원”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브랜드 체험관인 만큼 2층에 자동차 관련 서적 2500여권을 갖춘 도서관이, 3·4·5층에는 차량과 튜닝 브랜드 ‘TUIX’ 부품 등을 갖춘 체험관이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말까지.

◇산업과 미술의 다양한 만남=기업들의 예술 후원은 미술관에 기부금을 내 작가 활동이나 작품 구매를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현대차, 현대카드, 한진해운 등이 지난해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에 거액을 기부해 중진작가, 신진작가, 실험적인 미술 등 카테고리별로 후원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약을 맺고 향후 30년간 30억원을 들여 박물관 전시실 조명 환경을 개선해주기로 했다.

미술관을 운영하며 컬렉션 행위를 통해 예술을 후원하는 보다 전통적인 방법도 있다. 삼성의 리움미술관, 대림그룹의 대림미술관, 크라운해태제과의 장흥아트밸리가 그것이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같은 체험관 형식의 전시관은 화장품 업종인 아모레퍼시픽이 먼저 선보였다. 지난해 9월 경기도 오산 뷰티사업장에 개관한 ‘스토리 가든’에서는 미디어 영상과 각종 자료를 통해 미(美)와 관련된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예술가의 창의적인 작품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체험토록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로 평가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