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땅콩 리턴’ 사과 왜… ‘그룹 치명상’ 위기감에 항복

입력 2014-12-13 02:08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2일 ‘땅콩 리턴’ 사건에 대해 백기투항을 하고 나선 것은 논란의 초점이 ‘오너 일가의 제왕적 경영’으로 맞춰지는 등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사건의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버지이자 그룹 총수인 조 회장까지 나서 수습에 나섰지만 대한항공은 오너리스크에 대한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으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조 회장은 악화된 여론을 감안한 듯 ‘자식의 잘못을 부모가 사과할테니 노여움을 풀어 달라’고 대국민 호소를 했다. 조 회장은 서울 대한항공 본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 자격으로 사과한다는 사실을 수차례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을 ‘여식(女息)’ ‘조현아’라고 지칭했고, 조 회장 스스로를 ‘아비’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문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제가 교육을 잘못시켰다”고 참회하듯 말했다.

‘땅콩 리턴’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이후 파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커졌다. 대한항공을 향한 여론의 비난 수위도 계속 높아졌다. 대한항공은 이 기간 오너의 지침만 기다리다 수습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사건이 보도된 당일인 8일 밤 뒤늦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항공기에서 쫓겨난 사무장에게 잘못이 있었고, 조 전 부사장은 임원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는 변명 식으로 해명하면서 오히려 역풍을 받았다. 그나마 조 전 부사장은 피해를 입은 승객 등에게 직접 사과하지도 않았고, 회사 명의로 된 입장 발표문이었다. 내부적으로 잘못된 입장 표명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윗선에 의해 일축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거센 역풍에 직면하자 조 회장은 외국 출장길에서 돌아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사과 의사를 표현했다.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 보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부사장이라는 신분과 등기이사 및 칼호텔네트워크 등 계열사 대표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무늬만 퇴진’이라는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참여연대는 조 전 부사장을 항공법·항공보안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에 조 전 부사장은 사표를 제출하면서 부사장직도 내놨다. 다만 계열사 대표 등은 또 계속 맡기로 했다.

11일 국토교통부는 조 전 부사장에게 출두 통보를 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단 출두를 거부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조사에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는 의혹이 일었다. 검찰은 대한항공이 증거를 조작할 것으로 의심하고 압수수색까지 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 전 부사장 측은 뒤늦게 국토부 조사에 응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이 떠밀리듯이 뒷북대응을 반복하는 사이 조 회장 일가의 과거 논란이 됐던 언행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로열패밀리의 돌발적인 ‘갑(甲)질’로 비쳤던 ‘땅콩 리턴’ 사건에 대한 비난은 조 회장 일가와 그룹 전체로 확산됐다. 노조를 중심으로 회사 내부에서도 그간 오너 일가의 행태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파문이 닷새째에 접어들며 더 이상 관리 가능한 수준을 벗어나자 결국 국내 최대 항공사를 보유한 그룹의 총수인 조 회장이 고개를 숙이기에 이르렀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