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할리우드 대작을 꺾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님아…'는 11일 465개 상영관에서 6만5613명을 모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7일 개봉 후 누적 관객은 42만118명이다. 1위를 달리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6만350명을 모으며 2위로 내려앉았고 1000만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던 '인터스텔라'는 5만173명을 추가하는 데 그쳐 3위로 밀려났다.
지난 10월 23일부터 외화 ‘나를 찾아줘’에 이어 ‘인터스텔라’에 빼앗겼던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7주 만에 한국영화가 되찾았다. 유명 스타가 나오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백발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독립 다큐 영화가 이뤄낸 성과여서 기념비적이다.
‘님아…’는 독립영화 사상 최단 기간인 개봉 7일째 상업영화의 1000만 관객에 비교되는 10만을 넘어섰다. 11일째 20만, 13일째 30만, 15일째 40만을 돌파했다. 292만명을 동원한 역대 다큐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2008년)보다 13일이나 빠른 기록이다. 순제작비는 1억2000만원으로 11일까지 약 27배인 3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님아…’의 흥행 비결은 강원도 횡성 산골의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가 보여주는 아름답고 진정한 사랑에 있다. 이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느 닭살 커플 못지않은 애정 행각을 선보이는 노부부의 사랑 얘기가 세대를 아우르며 진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70년이 넘는 동안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지은 할머니와 단 한 번도 음식이 맛없다고 타박하지 않은 할아버지. 마당에 쌓인 낙엽을 치우다 상대방을 향해 집어던지며 장난을 치고, 불을 쬔 손을 가만히 얼굴에 대주는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밤에 화장실 가면서 무섭다고 상대방을 문 옆에 세워두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장면 등은 이른바 ‘썸 타는’(연인이 되기 전 핑크빛 감정을 주고받는) 세태의 가벼운 사랑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작품이 데뷔작인 진모영 감독은 당초 40, 50대 관객을 염두에 뒀지만 정작 개봉 초기 20대 관객이 많이 몰렸다. 노부부의 영원한 사랑에 감동한 관객들이 “부모님에게도 보여드리고 싶다”며 어른들의 티켓을 예매하는 등 폭넓은 세대로 관객층이 확대됐다. 입소문이 점차 번지면서 네이버 네티즌 평점이 9.68까지 치솟았다. 정겨운 시골 풍경과 소박한 일상이 주는 그리움, 향수도 관객을 끌어들였다.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 안정적인 배급망도 흥행에 한몫했다. 극장 체인 CGV의 아트하우스가 공동 배급을 맡은 덕분에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186개 스크린에서 출발했다. 영화 홍보사 측은 “따뜻하고 밝고 유쾌하고 마지막에 감동까지 주다 보니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객층이 확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은 영화 촬영 도중 별세한 조병만 할아버지의 1주기다. 영화 제작진은 혼자 남은 강계열 할머니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고인을 기렸다. 진 감독은 “‘인간극장’의 ‘산골 소녀 영자’처럼 한 인간의 삶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파괴된 전례가 있는데 할머니의 여생이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백발의 사랑, 세상을 적시다… 다큐 영화 ‘님아, 그강을~’ 박스오피스 1위 ‘이변’
입력 2014-12-13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