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고소·고발 공화국

입력 2014-12-13 02:11

우리나라에는 고소·고발이 유달리 많다. 지난해 경찰과 검찰에 무려 69만9865건이 접수됐다. 인구 1만명당 73.2건 꼴이다. 법체계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60배 이상이며, 매년 증가세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 풍조를 반영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고소·고발부터 해댄다. ‘묻지마 고소·고발’을 즐겨하는 정치인들에게서 배워서일까.

문제는 그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는 순간 피고소인과 피고발인은 피의자 신분이 되기 때문에 무고한 시민에게는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검·경은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수사력의 60∼70%를 쏟아붓고 있지만 기소율은 20%에 불과하다. 전국 검찰청의 형사부 검사들이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느라 주요 형사 사건을 소홀히 하는 경향마저 있다. 법무부가 향후 5년간 검사 정원을 350명 늘리기로 한 가장 큰 이유도 고소·고발 사건 증가다.

최근 들어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과 관련해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게 13건이나 된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언론과 야당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청와대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최고 권부가 불리한 상황에 대처하면서 사사건건 고소·고발에 의존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대화와 타협을 포기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고소대(告訴臺)’라는 야당의 비아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청와대가 이끄는 ‘고소·고발 공화국’은 ‘검찰 공화국’을 더욱 견고하게 할 뿐이다. 그에 따른 정치실종의 폐해는 어쩔 셈인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