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영화의 역사는 영화사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7년 프랑스의 레아르는 최초의 성서영화라 할 수 있는 예수의 고난을 묘사한 5분짜리 영화 ‘수난’(La Passion)을 발표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그랑 카페에서 상영했던 영화를 현대영화의 출발점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불과 1년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기독교는 초기 영화에서부터 성서의 이야기를 새로운 감각으로 담을 수 있는 획기적인 매체를 발견한 셈이었다. 영화가 교육과 선교의 훌륭한 도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처음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성서영화를 세계적인 대중영화의 반열에 오르게 한 사람은 세실 드밀 감독이었다.
세실 드밀 감독의 ‘십계’(1923)와 ‘왕중왕’(1927) 그리고 ‘삼손과 데릴라’(1949)는 성서가 할리우드의 흥행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로 남아 있다. 당시 성서영화들은 스케일이 큰 장편 서사극 형태를 지닌 까닭에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책으로만 읽고 귀로만 듣던 성서이야기를 대형 스크린으로 확인했을 때 당시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성서영화의 기술적 혁명 또한 세실 드밀 감독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신의 흑백영화이면서 무성영화였던 1923년작 ‘십계’를 1956년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개발한 최고의 기술이었던 비스타 비전(Vista Vision)으로 리메이크한 ‘십계’를 발표함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모세 이야기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비스타 비전으로 리메이크된 ‘십계’는 종래 화면보다 옆으로 길쭉해진 화면 비율 때문에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거대한 공간 연출에 매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성서영화가 사랑하는 주인공 모세가 이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새롭게 등장했다. 영화 ‘에일리언’(1979)에서부터 ‘글래디에이터’(2000)를 거쳐 ‘프로메테우스’(2012)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를 만들어왔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모세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하 엑소더스)을 가지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영화 ‘엑소더스’는 성서의 출애굽기에 기록된 모세의 탄생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진출한 이후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직후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영화의 맥락은 출애굽기를 따라 진행되지만 곳곳에는 성서와는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성서의 언급과 가장 다른 점은 모세가 지팡이 대신 칼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로왕 앞에서 뱀으로 변한 지팡이(출 7:10)나 홍해를 갈랐던 지팡이(출 14:16)는 보이지 않는다. 모세에게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백성을 안심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휘봉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영화는 이집트라는 거대한 제국의 장군 출신 혁명가로 모세를 세우는 까닭에 모세는 지팡이 대신 칼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측면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을 감수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왜 하필이면 모세를 택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모세의 이야기에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인들의 경우 ‘안전한 노예’로서의 삶과 ‘모험을 떠나는 자유인’으로서 갈등이 존재한다. 모세에게는 신분에 따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둘째는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현장체험하듯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막강한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장정만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대이동을 목격하는 일은 경이롭다. 특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역사적인 드라마 안에서 지켜보는 일은 물질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생각 속에서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분명 거룩한 충격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두 편의 막강한 모세영화를 갖게 되었다. 성서의 내용에 충실한 영화를 원하면 세실 드밀의 ‘십계’를 보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현장에 가고 싶다면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를 보면 된다. 그리고 성경을 펴면 모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 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디지털 문명 속으로 들어 온 모세
입력 2014-12-13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