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마련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된 홍콩의 도심 점거 시위가 11일 막을 내렸다. 지난 9월 28일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작된 75일간의 긴 여정이 마무리됐다.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내 ‘우산혁명’으로 불렸던 이번 시위는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의 눈을 뜨게 만들며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싸움 끝나지 않았다…새로운 형태의 시위 시작=홍콩 법원 집행관들은 11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부터 시위의 주무대인 애드미럴티 지역에서 각종 시위 용품과 현수막, 텐트 등을 철거했다. 홍콩 법원이 지난 1일 버스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애드미럴티에 대한 점거해제 명령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철거 작업에 저항 없이 순순히 응했다. 다만 마지막 수백명이 연좌시위로 버티면서 일부 시위대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끝까지 남아 있던 클로디아 홍콩 민주파 입법회 소속 모 의원은 “이것이 우리 싸움의 끝이 아니다”고 외쳤고, 앨리스라는 이름의 한 대학생도 “우리는 지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수천명의 시위대는 도심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했다.
도심 점거 시위는 막을 내렸지만 새로운 형태의 민주화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밤 홍콩 중심가에서는 ‘쇼핑 투어’라는 이름의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이 경제를 위해 적극적인 ‘쇼핑’을 주문하자 ‘실천’에 옮긴 것이다. 200여명의 시위대는 상가를 돌며 쇼핑을 뜻하는 광둥어 ‘가우우’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중문대 리랍펑 교수는 “새로운 불복종운동이 전개될 것”이라며 “극단적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기기 힘들었던 게임…미래에 대한 희망은 성과=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때 하루 10만명 이상이 모이는 등 열기가 고조되면서 ‘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기화되면서 시위대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 지지도 줄어들었다. 시위 지도부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시민단체 등으로 각각 나뉘어 한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실패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을 뚫기는 애초부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홍콩 시민의 패배, 중국의 승리로만 기록될 수는 없다.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링 스아오 교수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중국이 홍콩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는 기고를 통해 “중국의 강경 기조가 홍콩 젊은이들에게 중국과 중국 유산을 완전히 부정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홍콩중문대의 조사 결과 18세 이상 홍콩 시민 중 8.9%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이라고 답했다. 대학 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 알렉스 차우 비서장은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성공은 사람들을 일깨워줬다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개혁의 엔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의 민심도 잃었다. 홍콩 시위를 지켜본 대만 국민들은 지난달 29일 지방선거에서 친중(親中) 노선의 국민당에 참패를 안겼다.
하지만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센트럴 점령 사건은 불법 행위였으며 홍콩 정부는 질서를 회복할 권리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75일의 홍콩 시위 … “中 전투 이기고 전쟁은 졌다”
입력 2014-12-12 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