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땅을 밟았던 주한 미국대사는 현재 마크 리퍼트 대사까지 총 23명이다. 미국 국무부는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으로 한국에 미 대사를 파견한 1949년을 1대로 계산한다. 초대 주한 미 대사는 존 무초 대사로 당시 미 행정부 특사로 한국에 파견돼 있었다. 3월 대사 임명을 받고 한 달 뒤인 4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가 쓰고 있던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을 미 대사관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에게 반도호텔을 매각한 70년대 초까지 반도호텔은 미 대사관 겸 직원 숙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북한과 대치한 한반도 정세의 특수성 때문에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지근거리에서 경험했다. 제6대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을 지켜봤고,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때 개입해 그의 암살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제12대 월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대사는 박 대통령이 저격당한 1979년 10·26사태와 전두환 대통령의 1980년 12·12군사쿠데타를 목격했다. 민주화운동이 절정으로 치닫던 1987년 제14대 제임스 릴리 대사는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만나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며 “시위 진압을 위한 무력 사용이나 계엄을 선포할 경우 한·미 동맹의 심각한 훼손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은 물론 내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들어 제18대 대사로 임명된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이 터져 재임기간 내내 곤욕을 치렀다. 2004년 8월 임명된 제19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이듬해 4월까지 1년이 채 안 되는 재임기간이었지만, 우리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 행보로 ‘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힐 대사는 여중생 압사 사건 후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인 ‘카페 유에스에이(Cafe USA)’를 개설했다. 대사로서 첫 업무였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카페에 들렀고, 때로는 답을 직접 올리는 등 네티즌과 소통했다. 힐 대사는 재임을 마친 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곧바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에 잇달아 올라 북·미 협상을 주도했다.
제20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그때까지 역대 파견된 주한 미 대사 가운데 최고위급 인사였다. 직전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2008년 임기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항의시위가 계속되자 당시 야당 손학규 대표에게 항의 전화한 게 알려지며 물의를 빚었다.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행위라는 논란이었다. 2009년 미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후 201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차장으로 임명돼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제21대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첫 여성 대사이자 대표적 지한파(知韓派)로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했던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평화봉사단원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경력의 소유자였다. 1983∼89년 다시 한국에 와서 미 대사관과 부산의 영사관에서 근무했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대사로 부임했을 땐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최초의 미국 대사로 화제가 됐다. 한국인 전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 5월 공석인 인도 주재 미국대사 대행으로 임명돼 근무 중이다.
2011년부터 3년간 재임했던 제22대 성 김 대사는 첫 한국계 대사로 큰 주목을 받았다. 서울 태생인 김 대사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서울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가 1980년 미 시민권을 취득했다. 본명은 김성용이다. 미국에서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이 된 독특한 이력이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 부서 중 가장 많은 직원을 거느렸던 한국과 과장을 역임했다. 당시 빅터 차 백악관 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유리 김(한국명 김유리) 북한 팀장과 함께 미 행정부에서 한국 전문가로 통했다. 대사로 오기 전까지 북핵 6자회담 미국 특사를 맡았다. 김 대사도 ‘성 김의 모든 것’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한국인과의 소통에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재임기간 기대만큼 북한 문제에서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 10월 이임 후 미국으로 돌아간 김 대사는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동아시아태평양(동아태) 부차관보를 맡았다. 미국 대북정책라인에 다시금 본격 합류한 것이어서 앞으로의 활약상이 주목된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역대 주한 美 대사들] “내 이름은 심은경” 스티븐스 무한 한국사랑
입력 2014-12-13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