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6시40분쯤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 정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원 이모(65)씨에게 이 아파트 주민 A씨(30)가 “왜 쳐다보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이씨가 “쳐다보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A씨는 대뜸 이씨 얼굴에 주먹을 날리곤 발길질을 했다. 30대 젊은 남성의 폭행에 60대 이씨는 속수무책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다른 주민들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렸다. 이씨는 직접 112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고,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코뼈가 내려앉는 전치 5주의 중상이었다. 그런데 이씨는 주변에 “이 사건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이 아파트의 경비원 ‘잔혹사’가 놓여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주민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경비원 이모(53)씨가 분신해 숨진 아파트다. 공교롭게도 A씨가 살고 있는 103동은 숨진 경비원이 일하던 곳이었다. 이 아파트는 경비원의 분신 사망 이후 경비원과 주민, 주민과 입주자대표회의 등 구성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다.
입주자 대표들은 지난달 19일 경비원 등 용역 노동자 106명을 전원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숨진 경비원의 유족과 경비원 노조 측이 “일부 입주민의 모욕적 언사와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한 직후였다. 이후 경비원들이 파업을 준비하면서 주민과 경비원 간 갈등이 심화됐다.
숨진 경비원이 입원해 있는 동안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3000만원의 성금을 모아주는 등 성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비원들이 파업에 나서고 “돈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비난 여론까지 쏟아지자 경비원들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경비원 전원 해고를 결정한 입주자대표회의에 불만을 쏟아내는 주민도 많다. 일부 주민은 “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고 대표들 마음대로 해고를 결정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런 민원을 취합하는 관리사무소 담당자까지 해고 대상에 포함된 상태여서 현재 중재에 나설 사람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이번 사건으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있다. 이 아파트 주민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2012년 일부 경비원들이 주민 주차공간을 인근 상인들에게 불법으로 수수료를 받고 빌려줬다가 적발된 뒤 계속 갈등을 빚어 왔다”고 밝혔다. 관리사무소 측은 “그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폭행당한 이씨는 경찰 진술서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썼다. 폭행을 당하게 된 정황을 정확히 설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처벌을 원치 않은 이유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와 경비원들은 “이씨가 폭행 사실조차 말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A씨와 가족들이 사과해 합의는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조사를 위해 현장에 나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이씨가 사건을 주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전했다.
A씨는 평소에도 경비원들과 마찰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11일 “합의가 되긴 했지만 곧 피해자 이씨를 다시 불러 피해사실을 정확히 조사해 법 절차대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경비원들은 지난 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했고, 2차 조정에 실패하면 파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또다시 비인격적 폭력 행위의 가해자가 나왔다”며 “기자회견 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분신·해고 그 아파트… 이번엔 경비원 폭행 코뼈 내려앉아
입력 2014-12-12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