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굽는 틀 8개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거치대만 덩그러니 남긴 채 그 위에 있던 묵직한 쇠틀 8개만 누군가 밤사이 감쪽같이 훔쳐갔다. 서울 신월동 대림아파트 앞길에서 붕어빵을 굽던 노점상은 지난달 초 이렇게 빵틀을 도둑맞았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사한 뒤 천과 끈으로 리어카를 꽁꽁 감싸서 골목 한쪽에 세워둔 터였다.
그 노점상은 빵틀이 사라진 리어카를 인근의 김모씨 점포로 끌고 갔다. 김씨는 신월동 일대에서 노점상들에게 붕어빵 리어카를 대여하는 일을 한다. 이런 장비를 구입하기도 버거운 이들이 일단 장사를 시작해 보려고 그에게 빵틀과 리어카를 빌려가곤 한다. 대림아파트 앞 노점상도 그랬다.
김씨도 3년 전까지는 붕어빵 노점상을 했다. 힘들게 번 돈으로 밀가루 공장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붕어빵을 만들려면 밀가루가 있어야 한다. 김씨는 밀가루를 조금이라도 더 팔려고 붕어빵 노점상들에게 장비를 무료로 빌려주기 시작한 거였다.
그는 “붕어빵 일을 하면서 벌써 여섯 번째”라고 했다. 빌려준 붕어빵 리어카가 빵틀을 도난당해 빈 수레로 돌아올 때마다 허탈해진다고 한다. 대림아파트 앞 붕어빵 노점상은 빵틀 도난 이후 장사를 접었다. 김씨는 “마포에서도 구로에서도 여기서도 겨울만 되면 이렇게 털어가는 사람이 많네요. 나는 나대로 돈이 깨지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 못하고…. 악순환이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있는 정모(55·여)씨도 뭔가 벌이를 찾다가 김씨에게 장비를 빌려 지난 10월부터 서울 마포구 망원초등학교 앞에서 붕어빵 노점을 시작했다. 김씨 덕에 수십만원 장비값 부담은 덜었다. 하루 12시간 일해서 재료값 빼고 2만∼3만원 손에 쥐었다. 11월부터 ‘겨울 대목’이니 좀 더 수익이 나지 않을까 기대가 컸다. 그러다 지난달 11일 역시 빵틀을 도난당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왜 하필 우리냐”며 울먹였다.
이렇게 영세한 노점상들의 붕어빵 틀을 털어온 범인이 검거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달 1일부터 24일까지 양천구 일대를 돌며 노점 3곳에서 붕어빵 틀 24개를 훔쳐 고물상에 팔아넘긴 김모(52)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특정한 주거와 직업이 없이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빵틀 24개를 고작 6만원에 팔아 밥을 사먹는 데 썼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배고파서… 노점상 밥줄 훔친 노숙자
입력 2014-12-12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