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끝이 최초로 보도한 세계일보로 향하고 있다. ‘정윤회 문건’이 사실상 허위라고 결론 내리면서 명예훼손 여부로 중심이동을 하는 것이다. 다만 내용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청와대 공식 문건을 토대로 작성된 공익적 성격의 기사를 명예훼손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는 11일 세계일보의 지난달 28일자 기사가 청와대 비서관들과 정윤회(59)씨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청와대 측과 정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비서관과 정씨가 서울 강남의 J식당에서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날 정씨를 소환해 조사하며 문건이 허위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법 309조는 허위사실을 공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허위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반드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공적 영역에 관한 언론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판례는 보도 내용이 허위사실로 판명됐다 하더라도 보도 당시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위법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 기사 내용, 기사작성 경위, 사실 확인을 위한 취재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지난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PD수첩은 미국의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보여주며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대법원은 이를 허위사실로 판단했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라는 공적 사안에 대한 내용이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공직자들에 대한 악의적 공격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조계에서는 국정을 운영하는 청와대에 비선실세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보도는 충분히 공적 영역에 대한 기사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기사의 토대가 된 문건은 청와대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내부 문건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상황에서 관련된 청와대 공식 문건을 입수했다면 기사를 쓰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검찰은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하기 전에 진위 확인을 위해 얼마나 충분히 취재했는지 등을 조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靑 정윤회 문건’ 파문] ‘허위’ 사실상 결론… 명예훼손 여부로 초점 이동
입력 2014-12-12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