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궂은 날씨 속 제주도 동백동산은 바깥과 완전히 다른 별세계였다. 한낮인데도 한밤중처럼 어두워졌다가도 빗방울이 몇 줄기 지나가고 나면 햇살이 구실잣밤나무의 높은 가지 끝 녹색 잎 사이로 뻗어 들어온다. 눈을 감으면 바람소리와 나뭇잎 서걱거리는 소리가 마음 속 잡념을 말끔히 씻어간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동백동산은 크고 작은 용암덩어리와 나무, 덩굴식물, 양치류 등이 뒤섞여 독특한 화산 지형의 생태공간을 이루는 곶자왈 지대다.
지난 4일 동백동산을 다시 찾았다. 비와 우박이 내려 곳곳에 웅덩이가 생겼다. 멸종위기 식물인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를 만났다. 상록 다년초로서 전 세계를 통틀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1속1종의 귀한 식물이다. 멸종위기 동식물인 긴꼬리딱새, 팔색조, 비바리뱀, 개가시나무 등을 비롯해 15종의 법정보호 동식물이 0.59㎢에 불과한 습지보호구역과 그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가는쇠고사리, 더부살이고사리, 도깨비고비, 고비고사리 등 활엽수림 바닥을 가득 채운 양치식물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세계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71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동백동산은 2010년 환경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동산 내 가장 큰 연못인 먼물깍에는 순채, 통발, 미꾸리낚시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동행한 ㈔제주생태관광의 고제량 대표는 “과거에는 주민들이 물, 기름(동백나무), 나무와 연료(숯), 고기(사슴사냥) 등을 모두 곶자왈에서 구했기 때문에 보초를 서가면서 이를 지켰다고 한다”고 말했다.
4일과 5일 동백동산 습지센터에서는 ‘생태나누리 성과보고회’가 열렸다. 고씨는 특강에서 “선흘1리 주민들은 백서향과 제주고사리삼 복원사업, 습지 생물의 브랜드화 등을 통해 보전과 활용을 잘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마을 해설사 ‘질토래비’(길 닦는 사람)와 생태관광해설사를 양성하고, 마을 노인들의 토속적인 제주어 안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환경부는 지난 9월 17일 선흘1리를 생태관광 성공 모델 4개 마을 중 하나로 선정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동백동산과 선흘1리 주민들
입력 2014-12-12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