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뮤지션들의 평균 수명이 일반인보다 15년 이상 짧다. 그들은 자살과 같은 비극적 방법으로 최후를 맞을 확률이 높다.” 이런 실증 결과를 담은 연구 논문이 두 달 전에 발표된 적이 있다. 이 연구는 호주 시드니대학의 디에나 케나 심리학 교수가 1950년부터 올해 6월까지 60년간 사망한 세계의 팝 뮤지션 1만2665명의 수명과 사망 원인을 조사한 결과이다.
여기서 팝 뮤지션은 로큰롤, 재즈, 힙합, 가스펠 등 40여개에 달하는 장르의 대중음악가들이 모두 포함한다. 연구는 그 원인으로 대중의 관심이나 인기 하락, 평판에 대한 예민한 반응, 소득과 생활환경의 불안정성 등을 그 원인으로 든다.
이런 결과를 해석할 때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말하는 확률이란 점에 주의해야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결과는 내가 평소에 궁금하게 여겨온 한 가지 추측을 떠올리게 한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 가운데 단명이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반복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에 그런 흔적을 반복적으로 남기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슬픔과 어려움을 반복해서 듣거나 외우고, 또 어떤 사람은 기쁨과 밝음을 반복해 듣거나 외운다면 그 결과에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내는 늘 아이들과 나에게 슬픈 노래를 읊조리거나 부를 때마다 주의를 주곤 한다. 아예 “그런 노래 듣지 마세요, 혹은 부르지 마세요”라는 주문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까지 소개한 사례들에서 명확한 인과관계를 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심코 즐겨 듣는 음악이 우리의 심성이나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몇 해 전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할 당시 나는 플라톤의 ‘국가’를 꼼꼼히 몇 번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그의 나이가 50세 무렵(기원전 380∼370년)에 집필된 책으로 정의로운 삶과 국가에 대한 실천 방법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론 곳곳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의 거의 절반 이상을 시와 음악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플라톤이 자신의 대표작에서 이렇게 많은 지면을 음악에 할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제2권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건전한 음악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는데 “음악적 수련이야말로 다른 어떤 수련보다도 가치 있는 걸세. 리듬과 하모니가 신(영혼)의 내부로 파고들어가 우아함을 심어주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음악은 리듬과 선율을 통해서 영혼의 비밀장소로 파고들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음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플라톤에 대해 나는 졸저 ‘고전강독2’에서 “시와 음악은 사람의 애욕과 분노 그리고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와 음악, 설화(이야기)는 성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설명을 더한 적이 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음악과 영혼 사이의 상호관계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동감을 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신 이후에는 개인적이고 특별한 체험을 자주 하게 된다.
좋은 성능을 가진 현대 악기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연주하는 찬송에서도 예배에 몰입할 수 없는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된다. 반면에 시골의 작은 교회처럼 소박한 악기와 많지 않은 분들의 찬송으로 이루어지는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예배에 깊이 몰입하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된다.
호기심이 많은 필자는 그 원인에 대해 이따금 생각해 보게 된다. 예배 속의 찬송이 영혼의 문을 열어 제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룩함과 성스러움과 경건함으로 구성된 찬송은 세상 기준으로 소박할지라도 영혼에 울림이 강한 그런 결과를 낳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들의 기호가 바뀌는 것처럼 음악에 대한 기호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유행 속에서도 인간의 영혼 세계에 큰 긍정의 울림을 줄 수 있는 리듬과 선율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생각이 단순히 추론일 수도 있지만 세상 기준으로 멋진 성전 속에서 웅장한 찬송이 있지만 왜, 어떤 예배에서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힘든가라는 과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문제이다. 현재까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교회 음악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드럼과 같은 악기들이 지나치게 많이 가미된 곳에서 특히 집중력과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일은 내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교회 음악이 어떠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에베소서 5:19) 말씀이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팝 뮤지션과 수명
입력 2014-12-13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