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푸르른 시간’은 내 시의 오랜 주제이기도하다. 암울하고 답답하고 어디 숨 쉴 곳 없는 가슴 터지는 젊은 시절을 살아 내면서 나의 극기 방법 중에 하나는 겨울 새벽 무조건 산으로 올라가 점점 밝아 오는 빛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 빛이 밝아 오는 짧은 시간에 주변을 느긋이 메우며 살아 움직이는 여명, 그 푸르름이 너무 좋아 사실 산으로 올라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새벽 푸르름을 즐겼던 것. 그것이 신의 빛깔이라고 할 수 있는 엷은 청색이다. 청색은 나에게 희망. 청색은 나에게 도전. 청색은 나에게 한 번 더 입술을 물고 일어서는 의지의 빛깔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잠이 모자라 두 다리가 휘청거리고 할 일이 겹겹이 쌓여 이성을 잃을 정도로 난잡한 집안일을 뒤로 하고 겨울 새벽 5시 대문을 밀치고 뒷산을 올랐던 것이다.
동이 트기 직전에 온 산을 부드럽게 흐르는 청색의 빛을 온 몸에 두르고 내가 나에게 살아내는 의지의 힘을 그 푸르른 청색 속에서 벌컥벌컥 마시곤 했던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한다. 고통이나 슬픔은 딱 두 가지다. 그 아래 깔려 죽는 거와 그것을 극복하고 솟아오르는 일이다. 그 젊은 날에 사랑도 조국도 아니고 고통 속에 깔려 내 목숨을 버리겠는가. 나는 일어섰고 나는 솟아올랐으며 남루한 내 일상과 사귀며 열 손가락이 휘어지는 시간들을 살아냈다. 나는 그 푸른 여명의 빛깔로 영양제의 링거 한 병씩을 맞고 산에서 내려 온 셈이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냈다. 그 푸르른 빛깔은 또 한 번 저녁시간에 찾아온다. 해가 지고 막 어둠이 몰아쳐 오는 그 직전에 푸른 깃발을 흔들며 찾아오는 그 청색 청색. 그것은 오후의 영양제로 신은 또 한 번 어둠이 모두 어둠이 아니라고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고통만이 아니라고 고통은 슬픔은 잘 바라보면 예쁜 빛도 살아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루의 색채만 잘 읽어도 희망은 넉넉하다. 연말에 괴로운 일로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 어수선하게 한 해가 기울어지는 12월은 아무래도 우울하다. 나도 그렇다. 우울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 새벽 5시 집 부근의 삼청공원을 오른다. 바로 그 여명의 희망을 깃발처럼 휘날려 보려고….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새벽이라는 시간
입력 2014-12-12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