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살의 최연소 주한 미국대사, 만삭인 아내에게 비빔밥과 두부찌개 ‘별미’를 선사하는 가장, 애완견 ‘그릭스비’를 데리고 광화문 아침산책에 나서는 남자, 야구장에서 ‘치맥’(치킨과 맥주)도 즐기는 동네 아저씨….
마크 W 리퍼트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0월 30일 부임한 뒤 한 달 남짓 한국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이다.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도 한국인과 소통하려는 ‘공공외교’에 땀을 쏟았다. 리퍼트 대사가 이들과 다른 점은 한국인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감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개설한 ‘리퍼트 가족의 한국 이야기’ 블로그와 그의 트위터에는 아내인 로빈 리퍼트, 애완견, 음식 등의 사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공식 외교일정 외에 사생활을 공개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SNS의 흥행 공식을 아는 것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전임 대사들에게선 보기 어려웠던 자유분방함이 묻어난다.
리퍼트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 실세란 평가 때문에 부임 전부터 이목이 쏠렸다. 그런데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기는커녕 김장문화제에 참가해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김치 한 점을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고, 수능 전날 ‘수능 파이팅!’ ‘잘 풀릴 거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사진). 덕수궁 뒤편 대사관저(하비브하우스)에 사는 리퍼트 대사는 광화문 대사관까지 주로 걸어서 출근한다. 휴일엔 그릭스비를 데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실세’의 털털한 모습은 한국인에게 ‘반전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리퍼트 대사의 첫 출발이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진짜 평가는 주한 미국대사로서 본연의 임무가 본격화되는 순간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한·미 사이에서 한반도 정책을 얼마나 잘 조율해낼지가 관건이란 것이다. 냉혹한 외교의 세계에서 양국 간 핵심 이익이 충돌할 때 리퍼트 대사가 지금까지처럼 마냥 친근한 모습만 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년은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자 박근혜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는다.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에서의 진전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좋은 네트워크를 가진 리퍼트 대사가 한국 사정을 미 행정부에 정확히 전달하고 한반도 정책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상당하다.
반대로 ‘한·미·일 미사일방어(MD)체계 전도사’로 알려진 그가 MD를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를 주장할 경우 북한 문제가 더 어렵게 꼬일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리퍼트 대사가 미 국무부가 아닌 주로 국방부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 문제가 군사·안보 분야에 경도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외교부 한 당국자는 “리퍼트 대사가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일하다 와서 동북아 내 군사 관계에 특히 관심을 쏟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막상 부임 후 공개석상에서 밝히는 포부를 들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한 사람의 주한 미국대사로서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한·미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해 보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주한 美 대사 ‘리퍼트’] 인물탐구 뻣뻣한 실세? 털털한 아저씨!
입력 2014-12-13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