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면서도 경영실적 개선은 남 얘기처럼 취급했다. 정부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공기업 선진화를 위해 대대적인 '군살빼기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최근 3년 새 실적이 몰라보게 좋아진 공기업이 있다. 2011년 38조원 수준이던 실적은 이 추세라면 올해 95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변화의 시작은 수장(首長)이 바뀐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민간기업 경영인 출신인 대한주택보증 김선규 사장 얘기다. 그는 "공기업도 열정만 있으면 민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한주택보증 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장실 한쪽 벽면엔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람은 하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보증 실적이 90조원을 넘으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비결이 있나.
“공기업의 역할은 결국 국민에게 행복을 드리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좋은 일, 착한 일’을 찾으려고 애썼다. 우리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착한 일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지원하는 것 아니겠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부임 이후 직속으로 신사업개발실을 만들어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3년간 신상품 22개를 출시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얻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내년부터 100조원 규모의 국민주택기금 운영과 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현재 국내 주택시장은 공급은 거의 끝나가고 도시 재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신도시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마무리되고 앞으로는 20년 이상 노후된 도심을 재생해야 한다. 일본의 롯폰기힐스가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별 볼일 없는 마을이었지만 창의적인 마을 개량을 통해 새롭게 거듭났다. 정부는 ‘경제혁신3개년계획’에서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주택기금을 주택도시기금으로 개편키로 하고 대한주택보증을 전담 운용기관으로 지정했다. 단순히 금융 공급 중심이던 업무 영역이 투융자까지 확대된 것이다. 우리가 보유한 신뢰도와 공적보증 운영 노하우, 분양보증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등을 통해 축적된 사업성 분석 및 관리 역량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와 관련된 절차들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고, 관련 법률 제정 시 향후 프로세스에 대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전담부서도 설치를 완료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실시하려할 때 투자자로 참여함으로써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약발이 신통찮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경기침체, 저금리 진입으로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돼 있고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 상황은 여의치 않다. 해답은 기본에서 찾을 수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은 과거 주택시장이 활황일 때 규제를 위해 나온 정책인데 지금은 시장에서 아예 작동이 안 되고 있다. 시장에 맡겨놓을 때가 됐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민생 안정을 위해 정부 정책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추세다. 월세 안정화를 위해 ‘임대료 보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자산가치가 증대될 것이란 기대가 있을 때 전세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집을 투자나 자산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고, 베이비붐 세대도 부동산 자산을 다운사이징(소형화)하는 추세다. 전세시장이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이 속도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반전세가 많은데 임차료를 한두 달 밀리면 보증금에서 깎아버리는 집주인이 많다. 정부도 임대관리 회사를 활성화하려고 하지만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대한주택보증은 임차료 지급보증 상품을 이미 출시해 운용하고 있다. 입주자가 납부할 월세를 두 달 동안 밀려서 임대차 계약이 해지될 위기에 있을 때 미납부한 월세를 보증해주는 상품이다. 임차료 지급보증만으로 보증금 없이 살 수 있는 시대가 조만간 올 거라 믿는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을 공기업 최초로 수상했다. 향후 브랜드 관리에 대해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가.
“‘주택보증’ 브랜드를 중심으로 주택시장과 정부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신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개발 출시해 주택시장 안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내년 조직을 주택도시보증공사로 확대하면서 ‘HUG’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Housing and Urbanising Guarantee’의 이니셜을 붙여서 만든 브랜드인데 국민들을 껴안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주택보증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이고 있나.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단기간에 주택 문제를 해결한 국가다. 주택보증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점에 주목해 우린 국내에만 머물던 시야를 해외로 돌렸다.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인도 등의 국가는 주택을 분양할 때 문제가 많이 발생하더라. 이들 국가에서 우리의 주택 분양제도를 도입하고 싶다고 요청이 들어왔다. 베트남은 주택보증제도 도입이 올해 기획재정부 KSP 사업에 선정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고, 말레이시아는 부동산주택개발자협회에서 주택보증제도 도입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카자흐스탄엔 2억원을 받고 주택보증 노하우를 수출해 계약 성사단계다. 양국 간 경제 협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소감을 말해 달라.
“취임 초 1주일간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구상해 온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기우였다. ‘착한 일,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오다 보니 결과도 좋아 감사하다. 우릴 신뢰해 준 정부에 감사하고, 그동안 도와준 주택 업계에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밤을 새워가며 묵묵히 일해 준 직원들이 고맙다. 직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이동훈 경제부장이 김선규 대한주택보증 사장을 만나다
입력 2014-12-12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