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현해탄 건너온 먹장어, 한국 서민음식 된 사연은…

입력 2014-12-12 02:14
한국전쟁 시기의 부산 자갈치시장을 찍은 사진이다. 엉성하게 얽어맨 간이 노점이 해안에 즐비하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따비 제공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국가가 영토 끝에 있는 연안 해수면에도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영해(領海)’라는 개념이 유럽 국가들 사이에 퍼져간다. ‘해삼의 눈’(1990년)을 쓴 일본 어류학자 쓰루미 요시유키는 영해라는 개념에 대해서 국가라는 존재가 ‘대지 쪽에서의 발상’에 젖어 있다는 사실, 거꾸로 말하면 ‘바다 쪽에서의 발상’을 누락시키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바다 쪽에서의 발상’이란 무엇인가? 일본 저널리스트가 쓴 ‘한일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는 바다 쪽에서의 발상에서 출발한 책이다.

‘한일피시로드’로 안내하는 두 주인공은 먹장어와 명태다. 부산 자갈치시장 하면 알루미늄 포일을 깔고 구워주는 먹장어구이(꼼장어구이)가 유명한데, 거기서 팔리는 먹장어의 상당량은 일본산이다. 저자는 일본에서는 먹지 않는 먹장어가 한국에서 대표적인 서민 요리가 된 이유를 궁금해 하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의 기록을 살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먹장어가 식용이 아니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먹장어 가죽 공장을 부산에 세웠고 배고픈 서민들이 가죽을 벗기고 남은 먹장어를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 잡힌 먹장어가 한국으로 오는 대신 한국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간다. 교토 중앙시장에서 연간 거래되는 갯장어의 4분의 1 이상이 한국산이다. 갯장어는 한국에서 먹지도 않던 생선이었다. 일본으로 수출이 되면서 어획량도 늘었고 한국에서도 여름 보양식으로 먹게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생선 명태에도 바다를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역사가 짙게 배어있다. 19세기 말까지 명태잡이는 조선인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새로운 어업기술과 자본을 가진 일본인들이 기선저인망 어업 방식으로 명태잡이에 뛰어든다. 명란 외에는 명태를 먹는 일이 없었던 일본인들이지만 명태를 좋아하는 조선인들에게 팔고자 남획한다. 그 결과 명태는 이제 러시아와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생선이 됐다.

생선의 길에는 국경이 없다. 먹장어와 명태는 두 나라를 오가고 지역과 역사를 헤집으면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그렇게 바다는 단절과 구분,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연결과 교류, 공생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물고기와 수산업의 역사, 항구도시 이야기, 한일관계 등을 다루지만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과 인터뷰를 촘촘하게 배치해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6·25전쟁 시기 피난민의 도시였던 부산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이나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어류학자 정문기(1898∼1995)와 그보다 7년 선배였던 우치다 게이치로를 통해 어류학에서의 식민지학 문제를 따진 부분은 흥미롭다.

저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두 나라의 미래를 상상한다. “만약 우리 몸이 그 깊은 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꿈꾸는 힘’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면 하나의 바다에서, 각각의 물가에서 바다 저 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호소해서 바다와 바람과 물고기들과 함께 ‘먼 여행’을 다시 한 번 시작하는 일은 아직도 가능할지 모른다.”

해양대국 일본의 바다에 대한 서사가 얼마나 깊고 풍부한지 엿보게 하고 새삼 감탄하게 하는 책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