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등의 역작을 남긴 찰스 디킨스(1812∼1870)는 셰익스피어(1564∼1616)만큼 인기를 누렸던 19세기 영국의 대문호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 덕분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역사책을, 그것도 ‘아동을 위한 영국사(원제:A Child’s History of England)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20세기 초기까지 영국의 초등 교과 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사랑받은 이 책이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도서출판 옥당)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집필 당시인 1800년대 잉글랜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국을 이룩한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의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양극화도 심해져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 1830년대 런던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의 절반이 10세이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
디킨스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 디킨스는 아버지가 빚을 져 감옥에 가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공장 노동을 해야 하는 등 주경야독으로 성공했다.
작가, 그것도 대문호가 쓴 역사책이라 확실히 다르다. 책은 카이사르가 브리튼을 침략하던 BC 50년 즈음부터 19세기의 빅토리아 여왕에 이르기까지 2000년 영국사를 다루는데, 소설 읽듯 술술 읽히는 것은 물론이고 디킨스만의 독특한 시각과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난다. 영국사를 통치자를 중심으로 서술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중의 편에 서 있다. 그래서 그의 군주론은 상식과 많이 다르다.
예컨대,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서도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위대한 여왕이 아니라 자신이 통치하던 시대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 같은 걸출한 인물이 배출된 덕을 본 거라고 평가절하 한다. 이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끊고 영국 국교를 만든 ‘스캔들의 왕’ 헨리 8세에 관해서는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악당’ ‘잉글랜드 역사에 튄 피와 기름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객관을 가장하지 않고, 영웅사관을 경계하며 피통치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쓴다는 분명한 태도야 말로 이 책이 갖는 힘이다. 위트가 넘치면서도 때로는 통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디킨스 식 서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민청기·김희주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어린이 책-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 대문호의 통찰력·위트 버무린 2000년 영국사
입력 2014-12-12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