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폰 번호, 스미싱에 도용된다

입력 2014-12-11 02:28

“정말 수입차를 싸게 살 수 있나요? 사기 치지 마세요.”

정모(56·여)씨에게 낯선 번호로 뜬금없는 문자와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3일이었다. 한 번에 수십통씩 하루에도 수차례 문자가 쏟아졌다. ‘누구신데 이런 문자를 자꾸 보내냐’는 불만이 담긴 전화도 계속 걸려왔다.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자동차 판매 광고나 청첩장을 빙자해 악성코드를 심은 링크를 보내는 ‘스미싱(Smishing)’에 정씨 번호가 도용된 거였다.

정씨는 ‘스팸메시지 보내지 말라’는 항의성 문자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스마트폰을 해킹당했는지 자꾸 문자가 발송된다”고 해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1주일 만에 10년 가까이 쓰던 휴대전화 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오래 쓰던 번호라 애착도 있고 ‘피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정씨는 휴대전화 번호를 새로 받으면서 아예 문자메시지 송수신 기능을 해지했다.

영업사원 기모(28)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말부터 ‘사기꾼’ ‘똑바로 살라’는 내용과 함께 욕설이 담긴 문자와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정부의 민원포털 ‘민원24’를 사칭해 ‘쓰레기 무단투기 민원이 신고됐다’며 스미싱 링크를 첨부한 문자가 기씨 번호로 발송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씨 역시 사흘 만에 번호를 바꿨다. 영업사원이어서 명함을 바꾸고 거래처에 바뀐 번호를 알리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일반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도용한 스미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발송하는 ‘웹 발신’ 문자메시지는 휴대전화에서 발송하는 것과 달리 발신번호를 임의로 수정할 수 있어 스미싱, 스팸, 문자폭력 등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번호가 악용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주로 공공·금융기관 전화번호를 도용하던 스미싱에 일반인 전화번호가 동원되기 시작한 건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해 스미싱 차단시스템을 구축한 뒤부터다. 공공·금융기관 전화번호를 도용할 수 없게 시스템을 갖추자 일반 시민의 전화번호를 무작위로 수집해 ‘스미싱 발신번호’로 악용하고 있다.

피해가 잇따르자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동통신 3사와 함께 지난 7월부터 ‘번호도용 문자 차단서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이동통신사의 전화·인터넷고객센터를 통해 쉽게 신청할 수 있지만 10일 현재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 무선통신 가입자 5681만301명의 0.2%(13만1288명)에 불과하다.

결국 한 번 도용되면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수사기관에 의뢰해 전화번호 도용자를 적발할 수는 있어도 개별 피해구제는 민사소송 등을 거쳐야 한다. 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구제 방법을 묻기도 하는데 사실상 번호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인터넷진흥원에 접수된 휴대전화 스팸 신고는 1만2373건이나 된다. 반면 같은 기간 미래부가 찾아내 과태료를 부과한 스팸 송신자는 407명뿐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