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성인 소설 ‘너를 봤어’ 등으로 이어지며 대상 연령층을 상향해 글을 쓰던 김려령씨가 동화를 냈다. 그의 작가 인생은 동화에서 출발했기에 신작 ‘탄탄동 사거리 만복전파사’는 눈길을 끈다.
열 살 순주, 여섯 살 진주는 전파사의 파란 트럭을 타고 엄마 아빠와 휴가를 간다. 아빠는 별장을 간다고 했었는데, 와서 보니 그냥 낡은 시골집 같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나누는 대화도 수상하다. “어때, 괜찮지?” “며칠 지내보고 결정하라니까, 한번 지내보자고.” 그래서야 순주는 탄탄동 만복전파사에 손님보다 더 자주 찾아오던 건물주인이 생각난다.
전작의 그랬듯이 이번 동화에서도 작가가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집 주인이 새 빌딩을 올리는 바람에 정든 동네의 상가에서 이사를 나와야 하는 탄탄동의 만복전파사 순주네와 수선집 유동이네 이야기가 주요 뼈대다. 유동이네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지만, 순주네는 아예 귀농을 결정했다.
이번 동화에서도 순주네와 유동이네는 좌절할만한 환경임에도 어둡지 않고 희망적이다. 아이들의 미세한 심리 포착, 유쾌한 에피소드, 그걸 표현해내는 위트 있는 문장만으로도 읽다가 슬며시 웃게 된다. 여기에 판타지까지 버무렸다. 순주와 동생 진주가 산 속 별장 벽난로 굴뚝으로 올라갔다가 마주친 산타클로스 마을과, 순주와 유동이가 ‘제 시간 보다 10분 먼저 울리는’ 이상한 시계 종소리를 피해 달아나다 만나는 조선시대 자린고비 마을이 그것이다.
판타지 공간들은 행복해지고 싶은 아이들의 갈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산타 마을의 산타 할아버지는 아빠처럼 크리스마스트리의 고장 난 전구를 고치는 이상한 사람이다. 판타지가 현실 회피가 아니라 현실을 껴안게 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작가의 건강한 세계관은 빛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어린이 책] 어두운 현실 속 ‘희망의 판타지’
입력 2014-12-12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