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 신이리 ‘달구네 농장’. 이곳은 이른바 자연농법으로 닭을 길러 유정란을 생산하는 양계장이다. 150m 길이의 축사 두 채에는 9000마리의 닭이 어우러져 돌아다녔다. 암탉들의 몸 색깔은 붉었고 깨끗했다. 볏짚이 푹신하게 깔린 땅을 밟고 선 두 다리는 튼튼해 보였다. 흰색 수탉들은 암탉 무리 속에 우뚝 선 채 가벼운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닭들은 좁은 ‘케이지’가 아니라 땅 위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50㎝ 높이의 횃대에 올라 꾸벅꾸벅 조는가 하면 산란통으로 뛰어올라 ‘출산’의 신비로운 시간을 보냈다. 산란통은 일종의 분만실로, 어두운 환경에서 조용히 알을 낳도록 만들어놓은 나무상자 통이다. 이날은 12월 들어 기온이 급강하한 날. 양계장에도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닭들은 별로 추워하지 않았다. 눈이 오는 탓일까. 닭 벼슬은 유난히 빨갛고 커보였다.
이런 닭들의 모든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모바일과 PC에서 확인이 가능했다. 양계장 한쪽에 설치된 카메라 때문인데 단순히 CCTV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웹 카메라였다. 이른바 원격농장으로 계란 생산과정을 전부 공개한 것이다. 이 원격농장 시스템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영국 일본 포르투갈에 이어 세계 4번째다. 스트롱에그협동조합(strongegg.com·대표 신동호)이 지난달 24일부터 IT 기술을 농업에 접목,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를 시작했다.
이날 만난 신동호(34) 대표와 남궁지환(32) 이사는 “양계장 내부를 공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환경에서 닭들이 생활하고 있고 좋은 계란을 낳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며 “우리의 모토는 닭이 행복해야 건강한 계란도 낳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스트롱에그협동조합의 브랜드와 마케팅, 디자인 작업 등에 주력하고 있다. 또 온라인 주문을 통해 산란한 당일 유정란을 정기적으로 전국 방방곡곡 신속하게 배달하는 ‘유정란 택배 정기구매’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계란 공급은 충북 영동의 양계장을 활용한다. 영동의 달구네 농장은 스트롱에그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신 대표와 남궁 이사는 정기적으로 이곳 농장에 들러 자체 개발한 택배용 포장상자를 이용해 전국 각지로 발송한다. 고객의 90%는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다.
기적의 사과가 귀농 계기
스트롱에그협동조합의 멤버들은 2년 전, ‘농사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도시 청년들이 귀농해 친환경 양계업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으로 뉴스를 탔다. 이들 이력도 전자공학(신 대표) 경영학(남궁 이사) 이탈리아 디자인 유학파(문국 이사)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도시 청년들이 잘나가던 직장을 버리고 농업 현장에 뛰어든 것은 ‘기적의 사과’ 때문이었다. 남궁 이사가 신 대표와 함께 브랜드컨설팅 회사에 다니던 시절, 기적의 사과를 접했는데 사과가 1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유가 궁금했다. 급기야 기적의 사과를 재배한 일본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씨를 만나기 위해 일본까지 다녀왔다.
“기적의 사과를 먹었는데 ‘달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한국 사과를 먹으니 아무 느낌이 없더군요. 기적의 사과는 뿌리가 깊은 게 특징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농약 때문에 뿌리가 약해져 맛이 없었던 것이죠.”
남궁 이사는 그때부터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신 대표와 함께 리서치를 시작했다. 한국 농업 현실이 궁금해 주말마다 사과 농장을 찾았다. 한국에도 기적의 사과가 있을까 싶어 수소문했다. 그런 사과가 있으면 유통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직접 브랜딩을 해서 유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절망이었어요. 농약 안 치고 사과농사를 할 수 있냐고 묻자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듣고 왔냐’ ‘허무맹랑하다’며 타박만 하더라고요. 절대 못한다는 답변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우리더러 귀농하래요. 농사가 아주 쉽다면서요. 때가 되면 기술센터에서 약 치라고 알려주고, 모르면 지도사가 도와준다면서 약을 치면 벌레도 안 생기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현대 농업은 마치 공장 같았다. 상품을 찍어내 듯 농산물 역시 대량생산 체제였다. 유가가 오르면 농작물 가격도 상승했다. 인간의 탐욕만이 농가를 지배했다. 이들은 국내 농업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바꿔보고 싶었다. 신앙인이었던 청년들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회복하고 싶었다. 마침 신 대표와 남궁 이사가 같은 회사에 다녔고 문 이사는 남궁 이사와 대학(한동대) 시절 수많은 공모전을 함께했던 멤버였다. 이들은 의기투합했다. 기독 청년 사업가를 키우는 ‘요셉비즈니스스쿨’을 통해 농업과 IT를 결합한 자연농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원격농장 콘셉트는 여기서 나왔다.
본격 계기는 2년 전 한 재단의 청년 창업 프로젝트에 원격농장이 선정되면서부터. 이들은 선정된 팀에 주어지는 2주간 해외탐방 기회를 얻었고 직장인에게 2주 휴가는 불가능해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 유학 중이던 문 이사도 합류하면서 전남 곡성군 옥과면으로 귀농, 병아리 2000마리로 본격 양계를 시작했다.
“귀농 동기는 각자 달랐지만 한국 농촌도 세련되고 선망하는 분야가 될 수 있을 거란 공통적인 희망이 있었어요. 디자인적으로 뛰어나고 깨끗한 고부가가치 아이템을 통해 하나님의 오리지널리티를 회복하자고 생각했어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먹거리를 확보해서 멋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한번 해보리라 마음먹었지요.”
행복한 닭이 건강한 계란 낳는다
전남 곡성에서 시작한 것은 그들의 자연농업 제안을 받아준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곡성은 자연농업 특화 군이었다. 종잣돈 3000만원으로 시작한 농사는 병아리 구입비, 원룸 임대료, 트럭 구입·수리비 등으로 빠져나갔다. 농장은 자연농업에 대한 의지를 들은 이웃 노인의 배려로 무상 임대를 받았다. 양계를 해본 적이 없었던 이들은 시행착오도 많았다. 병아리들의 눈에서 고름이 나올 때는 과연 약을 써야 하는지 고민도 했다. 약을 주면 친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술한 농장에는 족제비들이 들어와 닭을 헤치기도 했다.
TV나 영화를 봐도 농업만 보였다. “다들 봤다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는데요. 우리는 농업 이야기만 보이더라고요. 흙이 배신해서 옥수수밖에 남지 않은 현실,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거든요. 지금 농업은 화학비료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한두 세대 이후 땅은 어떻게 변할까. 아무도 모르죠.”
이들은 닭을 키우는 데 무항생제, 무성장촉진제, 무인공수정을 철칙으로 한다. 또 초록색 들풀에서 생성되는 ‘오메가-3’와 미생물을 혼합해 발효시킨 100% 자연사료만 사용한다. 병아리 시절부터 날씨에 강하게 키워 영하 18도까지는 야외에 노출돼도 건강하다.
“요즘 유정란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수정이 됐다는 것이고 수정이 되려면 좁은 케이지가 아니라 여유로운 공간에서 자랐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닭은 어디서 자랐느냐가 중요하지요. ‘케이지 프리(cage free)’냐 아니냐가 핵심이지 무정, 유정란은 아니거든요. 우리들은 사료나 성장 과정에서도 자연친화 방법을 쓰려는 거고요.”
실제로 이들은 스트롱에그 유정란을 깨서 노른자를 보여줬다. 잘 깨지지 않아 양 손바닥에서 옮겨도 멀쩡했다. ‘행복한 닭’에서 생산된 스트롱 에그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아토피 발진이 일어나지 않는 장점도 있어서 어린이 전용 계란으로서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신 대표는 “아직 소규모라 이익은 거의 없는 형편이지만 언젠가는 우리들의 진심을 알게 될 날을 기대한다”며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고 브랜드 마케팅도 더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동=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세계에서 4번째 행복한 닭… ‘스트롱에그협동조합’
입력 2014-12-13 03:53 수정 2014-12-13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