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병제] 말레이시아를 주목하자

입력 2014-12-11 02:20

부산에서 11∼12일 한·아세안 대화 수립 25주년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를 계기로 나집 빈 툰 압둘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공식 방문했다. 내년에는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다. 이 시점에서 말레이시아를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2013년 1인당 국민소득 1만1000달러 수준으로 싱가포르,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아세안 최고의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하는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을 통해 소위 ‘자원의 저주’를 비교적 잘 극복해 왔다.

그러나 1980∼90년대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으로 조성된 전자산업이 최근의 혁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고민이 많다. 또 그간 수입 대체형 성장전략 아래 자동차, 철강 등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 시절부터 꿈꿔온 자원과 엔지니어링 능력을 고루 갖춘 선진경제의 꿈은 잡힐 듯 말 듯 불안감과 함께 자리를 틀고 있다.

나집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중진국 트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하에 2010년부터 경제개조프로그램(ETP)을 마련해 12개 분야 130여개의 관리 과제를 집중 추진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지하철, 말-싱 고속철도 등 굵직한 인프라 투자와 함께 금융 유통 통신 콘텐츠 관광 비즈니스 등 서비스 분야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물론 그간 경제 기반을 이뤄온 석유가스 팜오일 고무 농업 등 1차 산업과 전기전자 제조업도 경쟁력 강화의 대상이다.

우리가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말레이시아는 특별한 파트너다. 이미 연간 교역규모는 200억 달러, 해외건설 수주액 34억 달러 등 좋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질적인 측면에서 더 중요한 양국의 협력 기회가 있다.

우선 말레이시아는 우리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발판을 구축하는 데 유용하다. 카자나내셔널(국부펀드)과 고용연금펀드 등 공적 투자 펀드가 활발하고, 풍부한 자금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어 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원으로 활용 잠재력이 크다. 해외시장 진출 측면에서 볼 때 강소기업은 특정 국가의 전체 시장규모보다는 자신이 특화한 틈새시장이 얼마나 성장 가능성 있는가에 관심이 많다.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높은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비재 시장이 있고, 여러 업종에 걸쳐 제조업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어 기업 간 거래(B2B) 시장 발굴에도 유리하다.

또 한 가지 유망한 분야는 연구·개발(R&D) 협력이다. 말레이시아는 석유가스 개발, 팜오일 및 고무 플랜테이션, 농생명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융합기술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데, 우리는 연관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적용할 산업기반이 제한돼 있어 상호 협력이 유망하다. 또 상류(upstream)뿐만 아니라 하류(downstream)산업에서의 기술협력 또한 유망하다. 일례로 오프쇼어 공동 R&D, 플랜테이션과 로봇기술의 접목, 바이오화학 등 분야는 향후 R&D 협력 잠재력이 큰 분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애정이 각별해서 K팝, 한국드라마, 한국스포츠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덕분에 양국 간 방문객 교류도 전년 50만명에 이른 데 이어 금년 35%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도 과거 30년간 추진해온 동방정책에 이어 제2차 동방정책 구상을 제안할 만큼 한국 배우기에 열심이다. 교육훈련 위주의 프로그램에서 나아가 본격적인 산업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며, 한국의 근면을 배우는 데서 나아가 창의력을 배우는 데 2차 동방정책의 초점이 있다. 여전히 일본과 한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을 내심 더 크게 보고 있는 눈치다. 이러한 기회를 잘 활용해 해외무대에서 창조경제 실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병제 주 말레이시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