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정→최·한 경위→대기업·언론사=검찰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문건을 출력·복사해 외부로 1차 유출한 인물로 박관천(48) 경정을 지목하고 있다. 이렇게 반출된 문건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겨졌다가 통째로 복사돼 본격적으로 시중에 퍼져나갔다는 게 검찰이 파악한 구도다.
검찰은 정보1분실 최모(45) 한모(44) 경위가 지난 2월 박 경정이 정보1분실장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청와대 문건을 발견하고 서로 공모해 대량 복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은 박 경정도 모르게 이뤄졌다고 한다. 박 경정은 자신이 보관하던 문건이 시중에 떠돈다는 사실을 알고 민정수석실에 “누군가 문건을 훔쳐갔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한 경위가 한발 더 나아가 문건 내용을 수정하거나 양식을 바꾸는 식으로 재생산한 뒤 ‘정보 장사’에 활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과 함께 연행해 조사한 한화S&C A차장은 한 경위로부터 문건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차장은 국회·정부를 비롯해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 언론인 등을 상대하며 정보를 모으는 ‘기업 정보원’이었다.
특히 “경찰 정보를 많이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한 경위가 평소 친분이 있는 A차장과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청와대 문건도 넘겼을 개연성이 있다.
검찰은 최·한 경위가 A차장 외에 다른 기업 대관업무 직원들에게도 문건을 ‘유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추가 확산 경로와 정보 출처 등을 캐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재계에서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한 부분은 한화 직원 1명”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세계일보 기자들에게 문건을 넘긴 인물로는 최 경위를 지목하고 있다. 기자와의 통화 녹음 파일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공개 문건들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공개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의 경우 다른 신문사 1곳도 입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두 언론에 유출된 부분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근거 희박해진 ‘정윤회 문건’=검찰은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허위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과 제보자 박동열(61)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그리고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의 3자 대질조사가 실체 파악의 분수령이 됐다. 박 경정과 박 전 청장은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조사에서 핵심인 정보 출처 부분에 대한 진술을 달리했다. 박 경정은 “박 전 청장이 ‘김춘식 청와대 기획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들은 내용’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행정관을 연락책 ‘K씨’로 지목한 것도 정보가 김 행정관 ‘입’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청장은 “김 행정관이 아닌 증권가 정보지와 다른 여러 곳에서 들은 얘기 일부를 박 경정에게 전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행정관은 “그런 모임은 알지도 못하는데 왜 나를 지목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말 박 전 청장이 박 경정을 만났을 때 출처를 ‘김 행정관 발언’이라고 과시했고, 박 경정은 이를 검증하지 않은 채 문건을 작성했을 개연성이 높다.
검찰이 이날 박 경정과 박 전 청장을 재소환한 것은 이런 정황을 개별적으로 재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검찰 한 간부는 “박 경정이 그간 ‘모임 참석자한테서 나온 정보’라고 했는데, 그 근거가 희박해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검찰이 관련자 통화기록·위치정보 분석 과정에서 증거를 찾지 못하면 다음주쯤 “십상시 모임은 실체가 없다”고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윤회씨가 대통령 비서진과 자리를 함께한 정황이 나오면 논란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neosarim@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