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오모(30·광주)씨는 지난해 11월 애지중지하던 ‘아이폰5’가 고장 나자 몹시 속상했다. 최신형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는 자부심은 배터리 성능이 한나절밖에 못 버틸 만큼 짧아지고 일부 액정까지 일그러져 상처를 입었다. 오씨는 곧바로 집과 가까운 광주의 한 애프터서비스(AS) 센터를 찾았다. 2012년 12월 아이폰을 구매해 보증기간(2년)이 아직 남아 있던 만큼 며칠만 수리를 맡기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닷새 후 오씨에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수리가 어려우니 30만원 정도를 내고 ‘리퍼폰’을 새로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퍼폰은 불량 부품을 교체한 사실상 중고품이다. 새 휴대전화를 살 수 있는 금액을 더 내고 중고품을 넘겨받으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오씨가 더욱 분통을 터뜨린 것은 애플의 정책에 따라 휴대전화를 아예 돌려줄 수 없다는 AS센터 측의 일방적인 태도였다.
별난 AS제도를 납득할 수 없었던 오씨는 이후 국민신문고와 한국소비자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오씨는 지난 5월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애플을 상대로 버거운 법적 소송을 시작했다. 불합리한 AS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오씨의 소송은 당초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처럼 무모한 것으로 보였다. 애플이 대형 법무법인 ‘화우’의 유능한 변호사들을 내세워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씨의 끈기와 뚝심은 1심 승소로 이어졌다. 광주지법 민사21단독 양동학 판사는 9일 오씨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휴대전화 구입비 102만7000원 외에 저장된 사진과 연락처 등을 돌려받지 못한 데 따른 정신적 피해 배상금 50만원을 더해 152만7000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오씨가 애플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지 1년1개월, 법적 소송을 제기한 지 7개월 만의 성과였다. 애플은 국내 아이폰 사용자가 고장수리를 신청할 경우 휴대전화를 고쳐 반환하는 대신 리퍼폰으로 대체하는 유별난 AS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고장 난 아이폰이 접수될 경우 애플 측은 미국 본사에서 직접 테스트를 거친 후 리퍼 여부를 판단한다. 리퍼 비용은 현재 아이폰5가 33만6000원, 아이폰4가 25만원 선이다. 게다가 애플은 아직까지 한국 직영점을 두지 않아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은 문제가 생길 경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오씨는 “내 휴대전화를 돌려 달라고 사정하는 소송을 벌인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3년이 걸리든, 5년이 걸리든 소비자 권리보호를 위한 법적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애플 갑질 AS’… 소비자 뚝심, 1심 이겼다
입력 2014-12-10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