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이 숨겨둔 65억대 금괴 처자식도 몰라… 공사업자가 슬쩍

입력 2014-12-10 02:04

번쩍거리는 금괴 130개가 담긴 나무상자는 불에 그슬린 붙박이장 아래 숨겨져 있었다. 인테리어 업자 조모(38)씨와 박모(29)씨, 김모(34)씨 등 3명은 지난 8월 19일 오후 9시쯤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화재 보수 공사를 하다 이 금괴를 발견했다. 1㎏짜리 금괴 1개 값은 약 4600만원. 무려 65억원어치였다.

이는 사무실 주인 김모(84) 할머니의 남편 박모(2003년 사망·당시 80세)씨가 증권수익 등 평생 일군 재산을 금괴로 바꿔 보관해둔 것이었다. 박씨가 생전에 이 금괴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게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광복절이던 지난 8월 15일 사무실에 불이 나자 조씨 등에게 인테리어 작업을 맡겼다.

김 할머니가 없는 자리에서 금괴 상자를 발견한 세 사람은 “무서우니 경찰에 신고하자”는 쪽과 “입 닫고 있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이들은 일단 각자 1개씩만 챙겨 나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신고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견물생심(見物生心)이었다. 그날 밤 조씨는 동거녀 김모(40)씨를 데리고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남은 금괴를 모두 들고 달아났다.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데서 발각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씨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그는 금괴를 모두 챙겨 새 애인과 함께 도망쳤다. 복수심에 불타던 동거녀 김씨는 심부름센터에 “조씨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범행 전말을 들은 심부름센터 직원은 이를 경찰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직원의 제보를 받은 수원 중부경찰서는 사건을 서울 서초경찰서로 넘겼다.

경찰이 조씨를 붙잡았을 때는 금괴 40개와 벤츠 승용차, 현금 2억2500여만원만 남아 있었다(사진). 조씨는 “금괴를 금은방에 팔아 현금으로 바꿔서 지인 사업에 투자하고 차를 샀다”고 진술했다. 서초경찰서는 조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인부들과 금은방 업주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