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역사는 참으로 길다. 196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 정부가 압축성장을 이루기 위해 금융기관의 인사와 자금배분 등에 직접 개입하면서 금융지배는 시작됐다. 80년대 들어 시중은행이 민영화됐으나 정부는 감독권 등을 통해 계속 통제해 왔다.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헌재 사단’이 금융을 쥐락펴락하면서 본격적인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금융관료)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이명박(MB)정부 시절에는 MB 모교인 고려대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며 위세를 떨쳤다. KB·우리·하나·산은금융지주 등 4대 금융 권력을 휩쓴 것이다. 고대 동문 어윤대(KB) 이팔성(우리) 김승유(하나) 회장과 MB 핵심 인맥 강만수(산은) 회장은 ‘4대 천왕’으로 불렸다.
박근혜정부 들어선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출신이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내정자, 이광구 우리은행장 내정자 등이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이거나 서강대 인맥이다. 사전 내정설로 논란이 된 이 내정자는 9일 우리은행 이사회에서 행장 후보로 확정돼 30일 주주총회 이후 공식 취임한다. 지난달부터 내정설이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고조됐지만 윗선은 요지부동이었다. 각본에 따라 밀어붙였다.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비정상의 일상화’다. 금융 당국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논란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서금회의 ‘정윤회’가 누구인가”라고 따지자 신 위원장은 “제가 듣는 건 없다. 시장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신 위원장도 잘 모른다면 윗선은 유령이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위원장 내정 직후 이런 말을 했다.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되는 것이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되는 것이다.” ‘4대 천왕’을 겨냥한 발언이었는데 그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유령에 의한 내치금융. 이러니 금융시장 성숙도 부문에서 한국(80위)이 아프리카의 우간다(81위) 수준일 수밖에.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한마당-박정태] 유령의 금융 농단
입력 2014-12-1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