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제보 경로’의 윤곽이 드러났다고 해서 문건이 신빙성을 갖췄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관련자 진술은 여전히 엇갈린다. 첩보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모임 참석자, 논의 내용의 수준 등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보 경로는 김→박→박”=검찰은 8일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과 정보 제공자 박 전 청장, 청와대 측 고소인인 김 행정관을 3자 대질조사했다. 박 경정과 김 행정관은 지난 4일 각각 피의자와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뒤 4일 만에 다시 나왔다. 박 경정이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는 입장을 유지하는데다 박 전 청장이 김 행정관을 출처로 제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애초 문건의 골격을 박 전 청장에게서 나온 정보로 판단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박 경정의 통화 내역 등을 폭넓게 분석한 결과다. 박 전 청장은 지난 7일 밤 검찰 조사에서 박 경정과 접촉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전 청장은 자신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시중에 떠도는 말을 옮겼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내용은 김 행정관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3자 대질조사로 구체적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4일 청와대 고소인 8명 중 김 행정관을 조사하면서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분을 불렀다”고 밝혔었다.
박 전 청장과 김 행정관은 동국대 동문, 박 전 청장과 박 경정은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제보의 경로가 ‘10인 모임’의 내부로 향하자 일각에서는 문건을 ‘단순 찌라시’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크로스 체크’ 없었다=검찰은 여전히 신빙성 측면에서 문건이 허술하다고 보고 있다. ‘전언의 전언’을 토대로 문건이 작성됐다는 이유에서다. 3자 대질을 하기 전까지 박 경정과 박 전 청장의 진술은 차이가 났다. 박 전 청장은 전달한 내용에 비해 문건이 과장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 김 행정관은 변함없이 “모임 자체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이 박 전 청장에게서 들은 내용을 김 행정관을 통해 ‘크로스 체크’하지 않은 점은 신빙성 측면에서 큰 약점이다. 박 경정은 나름의 검증 작업을 거쳤다고 항변했지만 이는 박 전 청장과의 확인 내용으로 파악된다. 검찰 관계자는 “박 경정이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경정이 애초 문제의 문건을 왜 생산하게 됐는지도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 경정은 “지난해 말부터 김기춘 비서실상 교체설이 시중에 나돌아 소문의 근원지가 어딘지 추적하려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문건에는 정씨가 ‘십상시’ 모임에서 “이정현(홍보수석)을 날릴 준비를 하라”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등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문건이 정씨와 대통령 측근 ‘3인방’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음을 시시사한다.
검찰은 관련자 진술 외에도 객관적 증거를 최대한 끌어내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에 대해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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