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종갈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도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인들은 오히려 인종차별이 더 심화됐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사회와 경찰 간 ‘뿌리 깊은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는 미 전역에서 닷새째 계속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7일(현지시간) 정치 관련 매체인 ‘블룸버그 폴리틱스’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의 과반 이상, 특히 백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인종차별이 심화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3%가 2009년 오바마정부 1기 출범 이후 미국 내 인종 간 관계가 나빠졌다고 답변했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9%에 불과했다. 인종별로는 백인 응답자의 56%가 부정적으로 답해 같은 답을 한 흑인 응답률(45%)에 비해 더 많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최근 첨예한 인종갈등을 촉발한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사건’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두고는 백인 내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대런 윌슨 경관을 불기소 처분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의 결정에 대해서는 백인의 64%가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대니얼 판탈레오 경관에 대한 뉴욕주 스탠튼아일랜드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에 대해서는 32%만 찬성했다. 90% 안팎의 절대다수 흑인들은 두 사건 모두 불기소 결정에 반대했다.
판탈레오 불기소 결정 이후 주요 도시로 확산된 대규모 항의시위는 주말 내내 이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 소요로 비화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시위대가 고속도로에 폭발물을 투척했고, 같은 주 버클리에서는 식료품점과 은행 등에서 약탈이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에서도 폭력 시위가 벌어져 시위대가 체포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일부 공개된 흑인 케이블 채널 ‘베트(BET) 네트워크’ 인터뷰에서 “(흑백 갈등은) 우리 사회와 역사에 깊이 뿌리박힌 문제”라면서 “하룻밤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전과 지금 사건은 동일하지 않으며 선대(先代)에 비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전을 이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모두의 고통으로 이번 사건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흑인 대통령 시대의 역설 “美 인종차별 더 심해졌다”
입력 2014-12-09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