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근로자 2015년 ‘최저임금’ 물건너가나… 대량해고 대신 임금 동결·삭감 많아

입력 2014-12-09 02:40
서울 역삼동 한 아파트단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A씨(61)는 최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내년부터 근무시간 중 휴게시간을 기존 5시간에서 7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휴게시간 7시간은 야간에 휴식을 7시간 하라는 뜻이다. 늦은 밤 주차단속하고 정찰 돌고, 눈 오는 날 새벽부터 눈이라도 치우려면 야간 5시간 휴식이라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임금은 20만원 정도 줄어든다. 그런데도 A씨는 이 같은 결과를 ‘다행’으로 받아들였다. ‘최저임금 100% 적용’이 논란이 되면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원래대로 내년에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월 178만원 정도 됐을 월급이 157만원으로 낮아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8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 등에 따르면 내년 경비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전면 적용을 앞두고 애초 우려했던 대량 해고 대신 휴식시간 확대 등을 통해 사실상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하루 근무시간 중 휴식시간을 많게는 8∼9시간으로 늘려 최저임금이 적용돼도 사실상 임금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당수 아파트단지가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쳐 무급에 해당하는 휴식시간을 늘리는 데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입주자들이 경비원 수는 기존대로 유지해 청소, 제설, 택배수령, 교통정리 등과 같은 편의 서비스는 받으면서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임금 상승분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 경우 근로자의 소득 현실화라는 최저임금 적용이라는 목적이 ‘도루묵’된다는 점이다. 특히 애초 휴게시간이 7∼8시간 이상으로 한계치에 달해 있던 단지의 경우 휴게시간을 더 늘리면 근무시간은 줄지 않은 채 임금만 삭감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부가 고령자에 대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고용지원금이 유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고용은 유지하면서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면 중간에 용역업체 등이 지원금만 타내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용역업체를 쓰는 아파트단지의 경우 임금 삭감이 주민들의 관리비 절감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근로시간 조정을 통한 임금 삭감을 막을 법적 기준은 없다. 경비직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일반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