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서 ‘나눔의 집’ 운영 이웃사랑 실천

입력 2014-12-09 02:48

“저는 일반적인 목회를 하지 않았어요. 교회 내 정치는 쳐다보지도 않았고요. 이런 내가 왜 주교가 됐는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달동네에서 묵묵히 봉사하던 모습을 교회에 그대로 전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유낙준(54·사진) 주교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유 주교는 지난 6일 대한성공회 대전교구가 대전 침례신학대에서 개최한 ‘대전교구 제7대 교구장 성품식 및 승좌식’에서 대전교구장에 올랐다. 그는 8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주교로서의 목표를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만 답했다. 거창한 목표나 겉치레식의 다짐은 없었다.

유 주교는 성공회 내에서도 가장 실천적 신앙을 가진 인물로 꼽힌다. 그는 충남대 농화학과 재학시절 학생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90년 뒤늦게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견습사제를 끝낸 직후인 1996년부터 대전 성남동에서 ‘나눔의 집’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헌신했다.

“갑자기 신대원에 간 건 쉼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아픈 곳이 많았거든요. 그곳에서 만난 분이 현 경기도교육감인 이재정 신부와 신영복 교수입니다. 두 분에게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죠. 나눔의 집을 연 것도 가난한 사람과 함께 살았던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였어요. 말씀과 삶을 분리하지 말자는 목표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어요.”

유 주교는 현재 청소년 사역에 힘을 쏟고 있다. 1997년 대전 성남동 빈민가에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를 열었고 이후 대전시교육청과 함께 가정형 위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나눔의 집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생계를 이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어려운 이웃의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을 만들었고, 이들을 돌보다 보니 가출청소년까지 돕게 되더군요.”

낮은 곳에서 낮은 이들을 섬기며 살아온 유 주교는 대전교구장으로서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줄까. 그는 “예수님처럼 사는 교구장이 되겠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경청과 환대를 실천하려 합니다. 경청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고, 환대는 예수님이 주신 떡과 포도주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이죠. 도움을 주면서 생색을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나누는 것이니까요. 이를 실천하며 산다면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