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서 작은 호프집을 하는 정희순(56·여)씨는 지난 6일 김장을 했다. 배추 40㎏(약 15포기)으로 4인 가족이 먹을 김치를 담그는 데 23만원이 들었다. 정씨는 “지난해엔 배추 10㎏에 1만원 가까이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4000원 정도”라며 “중국산 김치는 불안하고 국내산 김치는 너무 비싸서 직접 담갔다. 몇 년 만에 김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번거롭고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던 김장을 직접 하는 가정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데다 올해 배추 값이 하락한 데 따른 것이다. 번거로운 배추절임 과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절임배추’ 상품이 나온 것도 한몫했다. 지난달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원)이 소비자패널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김장을 직접 하겠다’는 답변은 지난해(56.0%)보다 4.4% 포인트 증가한 60.4%였다. 김장을 하는 가정은 2001년 68.5%에서 줄곧 감소하다 올해 처음 반등했다.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의 배추 평균 도매가는 10㎏당 3257원이었다. 지난해보다 38% 낮다. 올가을·겨울 배추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각각 12%·13% 늘고 가을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의 출하가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랐기 때문이다.
중국산 식품에 대한 불안감도 김장 수요를 부추겼다. 농경원 조사 결과 ‘아무리 저렴해도 중국산 김치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84%에 달했다. 국내산 김치를 선호하는 이유는 ‘식품 안전성 문제’(69.7%)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14.3%) ‘국내산이 맛이 좋아서’(14.0%) 순이었다.
주부의 일손을 덜어주는 아이디어 상품이 속속 등장한 것도 김장 수요를 끌어올렸다. 지난 4월 결혼한 한은영(31·여)씨는 지난 5일 배추 10㎏를 구입해 혼자 김장을 했다. 그가 쉽게 김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인터넷으로 알게 된 절임배추 덕이었다. 한씨는 “배추를 직접 손질해 소금에 절일 필요 없이 절임배추를 물로 씻고 양념을 버무리기만 해도 돼 편했다”며 “요즘은 김장 양념도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입맛대로 주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절임배추 시장 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상품김치 판매량(1조2000억원)을 처음 넘어섰다. 절임배추 판매 신장률은 연평균 29%로 상품김치 신장률(3.7%)을 크게 앞질렀다.
김장을 하는 가정이 늘면서 김치냉장고 판매량도 덩달아 증가했다. 이마트는 지난달 1∼20일 김치냉장고 매출이 지난해보다 약 18% 상승했다고 밝혔다. 롯데하이마트 역시 10월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0%가량 증가했다. 유통업계는 배추 시세 하락에 따른 김장 수요 증가와 대용량 김치냉장고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김장 열풍… 절임배추 판매량, 상품김치 앞질러
입력 2014-12-09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