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순경 계급장을 달고 경찰생활을 시작한 피기춘(56·사진) 경위는 강원도 철원경찰서로 첫 발령을 받았다. 발령과 동시에 떨어진 첫 번째 업무는 지역 초등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범죄예방 강의였다. 막막했다. 23세의 나이에 강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단에 서자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나자 친구들을 괴롭히던 ‘악동’ 학생이 다가왔다.
“다시는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게요.” 진심이 통한 걸까. 강의 한 번으로 한 학생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피 경위 스스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강의가 올해로 33년째를 맞았다. 강릉경찰서 서부지구대에 근무하는 피 경위는 “처음에는 어떻게 강의를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다”면서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 첫 강의가 지금까지 이어 온 강의의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6년 속초경찰서로 옮긴 후엔 어촌마을을 찾아가 봉사하는 ‘상록수 경찰’로도 활동했다. 양양 현남면 남애리 어촌마을에 ‘상록수 경찰’로 배정된 피 경위는 마을 노인회관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소외된 노인들을 위해 시작한 ‘실버강의’ 봉사활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의 강의는 소외받은 노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희망을 심어주는 따뜻한 등불이 되고 있다.
30년가량 변함없이 봉사활동을 해온 피 경위는 10일 서울정부청사별관에서 열리는 제66주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식에서 인권강의 부문 대한민국인권상을 수상한다. 그는 전국의 노인대학과 노인회관을 순회하며 노인인권, 실버인생, 노인범죄 예방 등을 주제로 실버강의를 펼치며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특히 바쁜 경찰 업무 속에서도 비번과 휴무일을 쪼개 ‘재능기부 형식’의 무료강의를 해왔다.
피 경위는 현재 중앙경찰학교와 경찰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강릉 만민의 감리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 그는 전국 교회의 부흥회와 교회연합행사에 초청돼 성시낭송을 진행하는 등 시인이자 시낭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9일 전국경찰고객만족강사 워크숍에서 최우수 강사로 선정돼 경찰청장 표창장을, 31일에는 모범공무원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봉사이자 나눔”이라며 “봉사활동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서승진 기자
“청소년·소외 노인에 희망 심어준 따뜻한 등불”
입력 2014-12-09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