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청와대 얼라들’

입력 2014-12-09 02:41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못하는 분야는 인사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경제나 외교, 남북관계, 복지 등 다른 국정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인사는 정말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집권 직후 윤창중 사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인사와 관련해 수많은 파동이 있었다. 영남편중 인사나 낙하산 인사 논란도 많았다. 총리 헌법재판소장 등은 물론 감사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권력기관장을 모두 영남 출신들로 채우는 바람에 군사정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연임이 유력하던 우리은행장이 갑자기 사퇴하고 청와대 내정설로 파장이 일었던 서금회(서강금융인회) 멤버가 끝내 후보로 선정됐다.

밀실과 구중심처의 암투 의혹

박 대통령이 수첩에 적어두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용하거나 감싸는 인사 스타일 때문에 ‘수첩인사’ ‘불통인사’라는 말도 생겼다.

압권은 박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을 인사조치했다는 점이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으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사실을 확인해줬다. 누군가 박 대통령을 움직여 일개 부처 국·과장 인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 얼라들’을 거론한 적이 있다. 공식적으로 능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나이 40대의 문고리 권력 3인방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청와대 얼라들이 설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민주적인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역대 어느 대통령 시절보다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비서관들이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어느 대통령 때는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이 관저를 수시로 드나들어 대통령이 잠옷 바람으로 보고를 받기도 했다.

관저는 그렇다 하더라도 집무실은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구중심처에 있는 듯하다. 직접 대면이 아니면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이 전화라도 자주 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엄두를 못 내는 분위기라고 한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이 보고할 사항이 있어도 문고리 권력에게 문서로 전달하거나 대면보고를 허락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지 못하고 국정농단이 성행한다. 최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도 두 달 만에 열렸다. 이마저도 박 대통령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 회의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시스템 작동돼야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어떠한 개인적 소신이나 원칙도 민주주의보다 우선할 수 없다. 독재자들도 소신이나 원칙은 있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오픈 시스템이다.

장관이나 참모들이 문고리 권력의 제지를 받지 않고 박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고 전화를 걸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부처의 국·과장이 나쁜 사람이라는 보고를 받으면 부처 공식 조직 등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을 해야 한다. 장관이나 권력기관장 인사를 할 때도 언론 등을 통해 여론의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 자기들끼리 하는 우물 안 검증은 밀실 인사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로 일축하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바람에 수사 결과가 나와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 청와대 문건의 일부 내용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권력 내부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는 점이다.

인사가 만사라면 박 대통령은 만사를 그르치고 있는 셈이다. 당장 문고리 권력 3인방부터 읍참마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15년간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킬 리 없다며 감싸고 있어 걱정이다. 두려운 것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다는 소신도 예사롭지 않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