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 ‘허위’인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고소인, 문건 작성자, 참고인 소환 및 압수수색 등 1차 조사를 마칠 때까지 문건 내용을 뒷받침할 근거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십상시(十常侍) 정기모임’이 있었는지 여부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건 최초 제보자 조사, 관련자 휴대전화 위치정보 분석 등 몇 가지 중요 변수가 남아 있다.
◇검찰, 문건 내용 제보자 추적=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 경정과 직속상관이던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문건 생산의 근거가 된 최초 제보자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했음’ ‘∼라고 함’ 등의 문건 형식, ‘십상시’를 거론한 인물과 박 경정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모임 참석자가 제보자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문건 내용이 ‘전언의 전언’을 근거로 생산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초 제보자의 진술이 문건의 신빙성을 가리는 데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신원 특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건에서 “요즘 정윤회를 만나 부탁하려면 7억원을 준비해야 한다”며 박 경정에게 친분을 과시했다고 적시된 김모씨가 제보자일 것이란 추정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통상 민정수석실 보고서는 첩보 내용과 함께 별도로 정보 출처를 기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언론에 공개된 A4 2장 분량의 문건 외에 별지 형태의 문서 2∼3장이 추가로 있으며, 거기에 제보자 신원이 담겨 있을 개연성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을 제외한 모든 사건 당사자들은 회동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문건 속 정기모임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를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 장소로 지목된 서울 강남의 J중식당을 압수수색해 예약자 명단, 매출 전표, CCTV 영상 등을 확보했지만 단서가 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 역시 검찰 조사 당시 문건 내용을 증명할 별다른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이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인식될 수 있는 발언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검찰 수사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은 7일 문건 내용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가 모임의 존재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모임이 없었다’를 입증하는 쪽에 맞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기록 분석이 ‘변수’=검찰은 정씨 측에 “9∼10일 나오라”고 통보했다. 정씨 변호인은 일정 때문에 10일 출석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검찰에 나오더라도 ‘국정개입 의혹은 낭설’이라는 기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결론은 참석자로 지목된 인사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위치정보 분석이 나온 뒤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올 1월 이들이 일정 시간대에 같은 휴대전화 기지국에서 수신과 발신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 ‘회동’이 실제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모임 참석자들이) ‘차명폰’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통화내역을 세밀하게 보고 있다”며 “분석이 마무리되면 청와대 비서관들을 추가 소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건 유출 수사는 장기화 조짐=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 경위 수사는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파문의 시발점이 된 정씨 국정개입 문건뿐 아니라 박 경정이 청와대 근무 당시 취급한 문건들이 얼마나, 어떻게 반출됐는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볼 방침이다. 유출 과정 수사는 난관도 많다. 박 경정은 일관되게 유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도 지난 4월 유출 정황이 나오자 자체 조사를 통해 박 경정을 유출 당사자로 지목하긴 했지만 뚜렷한 물증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은 박 경정이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하기 하루 전 부하 직원을 시켜 삭제한 컴퓨터 파일을 모두 복구한 결과 그가 청와대 근무 시 작성했던 문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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