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로 정릉교회(박은호 목사)는 1975년 국내 교회 중 최초로 경로대학을 개교했다. 지역 저소득·독거노인들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고 일찌감치 고령화에 대비한 것이다.
수업은 1년 과정으로 진행되며 매년 초 신입생을 모집한다. 만 60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수업료는 무료인데,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연 2만원의 회비를 걷는다. 매주 목요일 열리는 수업은 복음 선포를 위한 예배로 시작한다. 명사들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하고 등산부 서예부 요가부 무용부 사회봉사부 등 다양한 특별활동반을 만들어 노인들의 취미생활을 돕는다.
졸업한 뒤에도 동문 자격으로 계속 수강할 수 있다. 매년 재수강 인원을 포함해 평균 200여명이 목요일마다 이곳에 등교한다. 1975년 1기로 입학한 156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624명의 노인들이 참여했으며, 총 3450명이 졸업했다.
정릉교회는 2011년 경로대학의 명칭을 ‘평생대학’으로 바꿨다. 박은호 목사는 “노인을 섬김의 대상으로만 보는 예전의 경로사상을 넘어 노인도 평생교육을 받으며 사회에 기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평생대학의 학생들은 스스로 봉사와 장학 활동에 나서고 있다. 평생대학 학장 김찬묵 장로는 “재학·졸업생들은 국립서울현충원의 무연고 묘 관리와 지역사회 다른 노인들을 돌보는 활동도 하고 있다”며 “쌈짓돈을 모아 마련한 장학기금으로 매년 8명의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장학금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 마련해야=대부분 교회는 늘어나는 고령층 성도들을 위한 사역이라고 하면 정릉교회과 같은 ‘경로대학’을 떠올린다. 하지만 같은 경로대학이라도 목회자의 이념과 비전, 그리고 교회의 색깔을 담아내지 못하면 정릉교회처럼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서울 강남구 도곡로 동부교회(강경신 목사)는 색다른 경로대학으로 유명하다. 경로대학의 이름은 ‘상록대학’. 1992년 만들어진 이곳은 보통의 경로대학과 달리 ‘놀이 프로그램’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록대학의 프로그램은 철저히 강연에만 집중된다. 이곳의 강연 수준은 종합대학의 특강과 맞먹는다. 분야도 인문 사회 정치 문화 예술 통일 등 다양하다. 지난 9월 4일에는 세종연구소 홍현익 박사가 ‘북한의 실상과 남북관계’, 9월 18일에는 한신대 류성민 교수가 ‘팔레스타인 분쟁의 딜레마’에 대해 강연했다.
강경신 목사는 “고령층 성도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이분들의 생각은 대한민국이 나갈 좌표가 될 정도로 중요해지고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좋은 삶의 교훈과 사회적 지침을 주려면 더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 목사는 상록대학을 ‘전도를 위한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곳’이라고 소개했지만 성과도 상당하다. 강의 때마다 60여명이 모이는데 절반 이상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지역주민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주민의 발걸음을 교회로 인도하는 셈이다. 강 목사는 “억지로 전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가슴속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라며 “상록대학에서 직접적 전도는 하지 않지만 강의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덕수교회(김만준 목사)는 노인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덕수교회는 2007년 ‘주간보호시설’ 및 ‘가정봉사원 파견시설’로 인가받은 ‘덕수노인복지센터’를 개원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경증 노인성질환이나 중풍, 치매로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보호하며 긍정적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있다. 특히 ‘노인주간보호사업’은 부득이한 사유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 등을 낮 동안 센터에서 보살펴줘 호응을 얻고 있다.
◇단체 활동으로 소속감 높여라=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김동배 교수는 노년 목회에 적합한 프로그램으로 ‘단체 활동’과 ‘자원봉사’를 제시했다. 그는 “노인들은 단체 활동을 통해 구성원들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가정과 사회에서 저하된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적절한 정신적 자극을 받으면 혼자라는 무력감 탓에 할 수 없었던 일도 자신감을 얻어 시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자원봉사활동도 노인들이 ‘내가 아직 유용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고독감을 없애 노년기를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비전교회(채이석 목사) 박미연 전도사는 최근 열린 교회갱신협의회 여성(돌봄)위원회 세미나에서 “노인 성도들은 만 70세에 직분에서 은퇴하면서 그동안 충성·봉사했던 모든 사역에서 물러나게 된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 봉사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데도 사역현장에서 물러나게 되면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역에서 소외된 데 따른 좌절감에 빠지며 자기 역할을 상실하고 지위가 낮아졌다는 생각으로 결국 소극적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박 전도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도팀 기도대’를 제안했다. 그는 “고령층 성도가 직접 전도지를 들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기도의 자리를 지키면서 전도대와 불신자를 위해 기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전교회는 노인 성도들을 중심으로 중보기도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토요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모여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일요일에는 주일예배를 위해, 월요일은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화요일은 나라와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식이다. 박 전도사는 “팀원들은 중보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고 사명감을 갖게 되며, 자신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단체 활동과 자원봉사를 결합해 고령층 성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교회도 있다. 경기도 수원 삼일교회(송종완 목사)의 ‘삼일실버대학’은 수강생의 특기를 살려 봉사에 나서도록 한다. 서예 그림 종이공작 등을 배워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재능을 나누는 것이다.
송종완 목사는 “어른들을 돌보는 단순한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경력과 재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자신의 특기를 살려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참여 열기가 높다”고 말했다.
진삼열·이사야 기자 samuel@kmib.co.kr
[한국교회,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5부] (5) 성공한 노인목회 모델들
입력 2014-12-10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