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세계일보 보도로 촉발된 정씨 관련 의혹의 핵심은 문서 내용의 진위 여부와 유출 경위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에 나오는 의혹들은) 근거 없는 것들”이라며 “문서 유출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그 직후 박 대통령의 언급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조 전 비서관은 2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건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며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정씨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 4월 자신에게 전화를 시도하며 접촉했다고 했다.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박 대통령에 의해 ‘함께 일할 참모’로 뽑혔던 사람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했다.
일각에서 “대통령이 작년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을 교체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박근혜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이 폭로전에 가세했다. 의혹은 정씨가 승마선수인 딸의 경기 판정결과에 불만을 가졌고, 이후 승마협회를 조사한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공무원 두 명이 인사 조치되는 과정에 박 대통령의 직접 ‘교체’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친히’ 두 공무원을 “나쁜 사람”이라고 콕 집어 적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곧바로 당시 정황을 잘 알만 했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충 정확한 정황이고 그래서 BH(청와대)가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김종 문체부 2차관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하나로 엮여 ‘인사 장난’을 쳤다”고도 했다.
유 전 장관 언급이 사실처럼 굳어지자 청와대는 급히 해당 국·과장 교체 배경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광범위한 체육계 비리가 척결되지 않는다. (문체부의) 담당 간부 공무원이 문제”라는 민정수석실 보고를 토대로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이처럼 유 전 장관과 조 전 비서관의 ‘발설’이 이어지면서 청와대는 이들에 대한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직무와 관련해 취득한 사실은 퇴임 후까지 말하지 않는 게 공직자들의 책무인데 이런 식으로 저버릴 수 있느냐”고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파문 진원지인 박관천 경정을 비롯해 전부 청와대가 고른 인물들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결국 이번 파문은 현 정부가 처음부터 단추를 상당부분 잘못 꿰어서 벌어진 자충수(自充手)라는 것이다.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됐던 과도한 비밀주의와 불통, 잇따른 인사검증 실패가 결국 이런 화를 불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청와대와 부처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서로 비선실세, 거짓말쟁이라고 총구를 겨눌 수 있느냐”며 “이래선 공직사회 개혁이고 뭐고 국정을 끌고 갈 동력 자체를 찾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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