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전에 온종일 입었던 진흙과 먼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단장을 하고 선조들의 궁정에 들어가면 그들이 나를 반깁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캐묻습니다. 그들은 정중히 내게 답변을 해줍니다. 지루함이라곤 없습니다. 온갖 근심과 가난의 두려움 따위는 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니콜로 마키아벨리)
온종일 원고와 실랑이하고 필자들과 줄다리기하다 퇴근한 오늘.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씨름 한판 하자며 도전장을 내미는 아들 녀석에 맞서 넉넉한 엄살과 할리우드액션을 버무려 가며 녀석의 힘을 빼둔다. 좀 더 버티며 힘을 빼줘야 나중에라도 순순히 잠자리에 들어가지 않겠나.
그 사이 아내는 서둘러 상을 차리고, 달랑 세 식구 분주하게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재잘거리느라 먹는 둥 마는 둥이다. 한 숟갈 야무지게 퍼 재잘거리느라 분주한 입에 물린다. 신속히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에게 동화 한 편 읽어주며, 오늘은 당신이 재우는 날이니, 빨리 준비하라고 아내에게 눈치를 보낸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아내 역시 서둘러 잠자리를 준비하고, 더 놀자고 버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잠자리로 보낸다. 잠시 소등.
눈치를 보다 조용히 불을 켜고, 미처 마무리 못한 샤워를 하고 나와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자유 시간. 궁정에서 입는 정장은 전혀 아니다. 미처 마르지 않은 머리는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다. 마키아벨리에 비하면 궁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네 인생, ‘그저 어느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까치 머리에 속옷 하나 달랑 걸치고 손에 잡히는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이 밤을 채워보는 것도 꽤나 운치 있지 않겠는가.
눈물 콧물 빼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술 한 잔 걸친다. 창 밖에는 조용히 눈이 내리고, 방에서는 아내의 곤한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안중철 편집장
국민일보-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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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출판사 한마디] 후마니타스
입력 2014-12-08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