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병입니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특히 노숙인들은 정상 생활이 어려워 결핵 발병률이 엄청나게 높아요.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죠.”
국내 유일의 노숙인 결핵관리시설 ‘미소꿈터’를 운영하는 박성광(42) 신부의 말이다. 대한성공회 소속인 박 신부는 지난해 1월부터 미소꿈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10월 성공회와 대한결핵협회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문을 연 미소꿈터는 지난 3년 동안 142명의 결핵 노숙인을 돌봤다. 재채기만으로도 전염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박 신부를 지난 2일 미소꿈터에서 만났다.
“전염 가능성이 없진 않죠. 1차 치료를 받고 오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에게서 전염될 확률은 매우 낮아요. 그런데 결핵의심환자를 응급보호방에 데리고 올 땐 전염 가능성이 꽤 있어요. 가끔 저도 결핵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결핵이 불치병은 아니잖아요. 제가 결핵에 걸려서 치료를 받다 보면 오히려 환자들을 더 이해하게 될 수도 있지요.”
아직은 2년차 소장이지만 박 신부는 사실 오래전부터 준비된 사람이었다. 박 신부와 노숙인의 인연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신학대학 신학대학원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그에게 친구가 서울 문래동 ‘자유의집’에서 일하자고 제안했다. 이곳은 당시 수용인원이 1000명에 달하는 초대형 노숙인 쉼터였다.
“저는 되게 비위가 약한 사람이에요. 냄새도 많이 나는 노숙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 실무자들하고도 다투고 그랬죠. 전쟁터가 따로 없어서 처음에는 1주일만 하고 그만두려 했습니다. 그래도 일을 마치고 쉴 때는 이들을 위해 일한 것이 싫지가 않더군요. 오히려 노숙인을 도우며 제가 배운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박 신부와 미소꿈터의 만남에는 운도 따랐다. 성공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뒤 처음 발령받은 곳이 경기도 평택 안중교회였다. 그는 이 교회가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 ‘은빛마을’의 원장을 맡았다. 은빛마을에서 3년간 일하며 목회와 사회복지의 균형점을 찾아갔다.
미소꿈터로 온 것도 그때의 경험 덕택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었고 은빛마을에서 사회복지 단체를 운영했던 경력을 보고 성공회는 박 신부가 미소꿈터를 이끌 최적임자라고 봤다. 박 신부도 새로운 단체에 금세 적응했다. 자신이 돌봐야 하는 대상이 노인에서 결핵 노숙인으로 바뀌었을 뿐 시설의 규모와 인력까지 비슷했다.
“사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어요. 심지어 저는 결핵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따뜻한 느낌이 들더군요. 건물 크기까지 제가 있던 곳과 비슷해 낯익기도 했고요.”
미소꿈터를 운영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박 신부는 곧바로 “예산”이라고 말했다. 처음 문을 열었던 2011년에는 운영비를 국고에서 100% 지원받았는데, 2012년부터 부처 간 알력다툼으로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미소꿈터의 한 해 운영비는 약 6억원이다.
“처음에는 결핵치료 사업이라고 질병관리본부에서 돈을 줬는데 이듬해 기획재정부가 노숙인 사업이라며 지방비로 넘기더군요. 서울시는 미소꿈터가 노숙인 시설로는 ‘미인가 시설’이라며 지원금을 주지 않았어요. 지난해에도 상황이 비슷해 대한결핵협회에서 돈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죠.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를 찾아가 한여름 시위를 해 힘겹게 받아내긴 했는데 결국 예산 1억원이 깎였습니다.”
예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박 신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박 신부는 오히려 노숙인들의 결핵치료를 돕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했다. 박 신부의 노력 덕인지 노숙인들의 결핵 완치율은 높아지고 있다. 미소꿈터의 결핵 완치율은 2012년 93.9%에서 지난해 97.6%로 상승했다.
“저는 이곳에서 저만의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명상의 시간을 갖는데, 그때 관상기도 등으로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가끔은 교회 안의 신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교회 밖의 신자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할 따름입니다(웃음).”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미션&피플] 노숙인 결핵관리시설 ‘미소꿈터’ 소장 박성광 신부
입력 2014-12-08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