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내셔널리즘·지하디즘 더 강해진다

입력 2014-12-09 03:03
2015년은 글로벌 차원의 조화나 화합보다는 세계가 더 대립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분열 현상은 비단 글로벌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우파와 좌파가 대립하는 등 한 나라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제 역시 대륙별로, 또 국가별로 양극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에게 유용한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추세도 뚜렷해질 것이란 점이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2015년의 세계'라는 내년 글로벌 전망 자료를 내놓았다. 매년 내놓는 것인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나쁜(Bad) 소식'이 많아 보인다. 이코노미스트가 내다본 내년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혼돈의 국제사회, 내셔널리즘 전성시대=우선 올해의 주요 갈등이 내년에도 해결되기 요원할 것으로 전망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 중동에서의 갈등,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들 간의 충돌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자칫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폴란드를 비롯한 발틱해 연안 국가들까지 쥐고 흔들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제재 문제를 놓고 유럽과 미국이 등을 돌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대립이 격화되면서 각국의 스파이 활동이 전성기를 맞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내년에는 자기 민족만을 우선시하거나 국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준동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에서는 프랑스 국민전선과 영국 독립당의 잇따른 보궐선거 승리에서 보듯 내셔널리즘에 바탕한 극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일본도 내부 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표출시키게 하면서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아울러 올해 스코틀랜드와 스페인에서처럼 한 국가 내 다른 민족들의 분리독립 요구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뜨는 지도자, 지는 지도자=뜨는 지도자 중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눈에 띈다. 올해 미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적 협력을 이끌어낸 성과에 이어 내년에는 경제성장과 인프라 구축, 교육 개혁 등을 통해 인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기대됐다. 인구(2억5000만명) 대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이슬람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국가 발전을 주도할 지도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권력이 더욱 집중되면서 중국의 번영을 이어갈 것이다. 내년 대선(10월) 전에 외국인 가족을 둔 사람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대권을 잡을 수도 있다.

반면 ‘펜’(행정명령과 거부권에 서명할 권리)만 가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레임덕이 뚜렷해질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내년에도 경제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날개를 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 명성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인기가 계속 추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하디즘이 더욱 공고해지는 중동=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중동에서는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지하디스트(성전주의)가 계속 세를 확장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내년에는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아랍 국가들 간의 내부 분열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의 다른 지역은 외국의 투자가 집중되면서 더욱 번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란도 내년 6월 말쯤 핵 협상을 타결짓는다면 지금보다 2배 정도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기와 기회의 아프리카=에볼라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아프리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외국의 숙련 기술자들이 아프리카를 떠나고 외국 투자도 급감하게 된다. 내년에는 에볼라 말고도 과도한 빚이 아프리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아프리카가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해왔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끌어온 빚에 바탕해 이뤄진 발전이었다. 일부 나라는 빚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 캐피털리즘(Afri-capitalism)이 성공할 경우 발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아프리 캐피털리즘은 석유나 광물 등 자원만 서구에 파는 식의 경제가 아니라, 자원을 아프리카 내부에서 가공해 완제품을 대륙 밖으로 수출하는 방식의 경제다.

◇빈익빈 부익부 글로벌 경제=내년 경제 성장은 미국이 주도하게 된다. 경제회복 기조가 뚜렷하고, 셰일오일 붐 및 저유가 등의 호재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달러화 강세로 해외에 있던 돈이 다시 미국으로 몰리면서 개발도상국들이 자본이탈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인도는 해외자본이 몰리면서 호황기를 누리고, 중국도 올해만큼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유럽과 러시아, 일본 등은 올해보다 더 침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중에 달러화와 유로화가 1대 1의 가치를 가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가장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상현실과 예측 컴퓨팅 기술 각광=소셜네트워크가 중심이었던 실리콘밸리는 내년에는 엔지니어링 타운으로 탈바꿈해 나갈 것이다. 특히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엔지니어링이 급성장하게 된다. 머리에 쓰는 가상현실 구현 기기나 소프트웨어도 많이 나올 예정이다. 디지털 기기가 알아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예측해주고 할 일을 알려주는 ‘예측 컴퓨팅’도 인기를 끌게 된다. 아울러 몸에 부착하는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와 드론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로 말하면, 실시간으로 상대방에 영어나 중국어 등으로 번역해주는 ‘스카이프 번역기’도 베타 버전이 내년에 나온다. 도요타는 한 번에 700㎞를 갈 수 있는 하이브리드 차를 내년이나 후년에 발표하고, 운전 중 주변의 차량끼리 알아서 정보를 주고받아 위험을 알려주는 시스템인 ‘V2X’도 미국 유럽에서 상용화된다.

◇거대 몰의 시대가 온다=우리나라에선 축구장 47개 크기인 33만9749㎡의 제2롯데월드가 개장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거대한 실내공간을 가진 몰 문화가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카타르에서는 내년 9월 40만㎡ 크기의 ‘카타르 몰’이 개장한다. 두바이에서는 내년 중에 75만㎡ 크기의 ‘월드 몰’이 착공된다.

‘적게 일하기’ 문화가 확산되고, 특히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5시 퇴근문화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업무시간 이외에 일 때문에 이메일이나 전화를 주고받는 문화도 점차 없어질 것이라면서 “장시간 노동의 종말이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런던의 우버 택시기사가 지금은 7000명이지만 내년과 후년에 더 늘어나 2016년에는 4만2000명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기존의 직업이 대체되거나 재편되는 현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동성애와 마리화나에 대해 글로벌 사회가 좀더 관대해질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위상의 역전 현상 가속화=내년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으로 탄탄히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미국의 원유 생산 우위 위상은 2050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내년 중 아시아의 100만 달러(11억원) 이상 자산가 숫자가 북미 지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에 유입되는 외국자본보다 중국이 외국에 투자하는 돈이 더 많아지는 해가 되고, 내년에도 중국의 실질구매력(Purchasing Power parity)이 미국을 앞지르게 될 것으로 관측됐다. 또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국방비 지출이 유럽연합의 국방비 지출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은 영국이 인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는 첫해이기도 하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