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인들과 팬들에게 2014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홍명보호'는 모두를 실망시켰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충격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8년이나 묵은 금메달의 한을 풀었다. 만신창이가 된 한국축구 대표팀은 울리 슈틸리케(60·독일) 감독을 새로운 선장으로 맞아 내년 1월 55년 만에 아시아컵 우승을 노린다. 국내 프로축구로 눈을 돌려보면 '봉동이장' 최강희(55·전북 현대) 감독의 성공 스토리가 펼쳐진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으로 복귀한 대전 시티즌과 광주FC의 투혼도 감동적이다. 올 한 해 동안 탄식과 감동을 전해 준 순간들과 인물들을 돌아봤다.
올해 한국축구 대표팀엔 좌절과 영광 그리고 희망이 교차했다. 홍명보(45) 감독이 이끈 월드컵 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해 쓸쓸히 짐을 쌌다. 반면 이광종(50) 감독이 이끈 올림픽 대표팀은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북한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연한 전술과 공정한 선수 선발로 한국축구 재건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홍명보호 ‘눈물’=홍명보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이전까지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려 왔다. 선수로서 2002 한일월드컵 4강을 이뤘고, 지도자로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런 홍 감독에게 ‘독이 든 성배’를 권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하며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을 주창했다. 그러면서 브라질월드컵 사상 첫 원정 8강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홍명보호’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한국축구가 월드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것은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이다.
홍 감독은 자기 확신에 빠진 선수 선발과 기용으로 ‘엔트으리(엔트리+의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선수들을 선발했고, 그런 선수들을 기용했다. 여기에 경험 부족, 리더 부재, 부실한 전술 등이 겹쳤다. 최악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홍 감독과 함께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을 이끌었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이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축구협회는 지난 7월 3일 그의 유임을 발표했다. 그러자 팬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홍 감독은 일주일 후 “브라질월드컵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망감만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전격 사퇴했다. 홍 전 감독이 한국축구의 큰 자산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한국축구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광종호 ‘영광’=실의에 빠진 한국축구를 구한 이는 이광종 감독이었다. ‘이광종호’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지 못했더라면 한국축구는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광종호’는 첫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조별리그 3경기부터 홍콩과의 16강전(3대 0 승), 일본과의 8강전(1대 0 승), 태국과의 4강전(2대 0 승) 그리고 북한과의 결승전(1대 0 승)까지 7경기 무실점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감독은 금메달을 따내고 “예전부터 가르친 선수들이라 파악이 모두 끝난 상태였고, 이 선수들과 연령별 아시아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며 “와일드카드만 잘 뽑으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 감독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는 U-17, U-20 등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면서 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설 선수들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또 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직후부터 우승에 방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팀들의 전술을 파고들었다. 그는 화려한 축구 대신 ‘이기는 축구’에 집중했다.
이 감독은 더 힘겨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것. 앞으로 올림픽 대표팀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아시아 예선이 제3국에서 단기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데다 전 대표팀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민들의 기대치도 한껏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감독은 다시 도전에 나섰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을 믿고 있다.
◇슈틸리케호 ‘희망’=내년 1월 9일부터 호주에서 열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을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외국인 감독이 한 명 왔다고 한국축구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열정에서 희망을 찾았다.
지난 9월 부임한 슈틸리케 감독은 4차례 평가전에서 2승2패를 기록했다. 유연한 전술과 다양한 선수 기용으로 브라질월드컵 이후 흐트러졌던 대표팀 분위기를 추슬렀다. 슈틸리케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다. 편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가려내기 위해 선수들을 제로베이스에서 평가한 것이다.
손흥민(22·레버쿠젠), 기성용(25·스완지시티), 이청용(26·볼턴) 등 붙박이 주전들을 선발에서 제외시키는가 하면 남태희(23·레크위야), 한교원(24·전북 현대) 등 비주전 선수들을 내보내 가능성을 확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매 경기 골키퍼와 포백에 변화를 줬다.
홍 전 감독이 단조로운 전술 패턴을 고집한 반면 슈틸리케 감독은 네 차례 평가전에서 공격 옵션들의 스위칭, 과감한 패스 등 특정 전술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 한국축구의 강점인 스피드와 체력을 앞세운 빠른 공수전환과 측면 공격을 가다듬었다.
‘슈틸리케호’는 15일부터 제주도에서 아시안컵 우승 담금질을 시작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아시안컵 본선에 나설 23명의 최종엔트리 구상을 이미 마친 상태다. 이번 훈련을 통해 K리그 선수들을 마지막으로 평가하겠다는 생각이다.
‘슈틸리케호’는 호주 시드니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리고 2015년 1월 4일이나 5일 한 차례 평가전을 치른 뒤 첫 경기가 열리는 캔버라로 이동할 예정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엔트으∼리’에 울고 인천亞게임서 웃었다… 되돌아 보는 2014 한국 축구
입력 2014-12-09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