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가 열여섯 살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사를 했다. 교육사업을 하게 된 남편을 따라간 것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조지프를 위해 해변 쪽에 집을 얻었다.
자폐아들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이 안정을 찾아 갔다. 틈틈이 봉사활동에 나가거나 음악공부를 했다. 그중 하나가 밴쿠버 매시극장에서 열렸던 장애우를 위한 자선음악회였다. 소프라노 김영미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 교수의 참가가 예정된 이 음악회에서 나는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됐다. 음악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이 열렸고 두 분이 한국과 미국에 계신다는 이유로 밴쿠버 현지 신문기자의 관심이 내게 쏠렸다. 기자는 첫 질문으로 가족관계를 물었다. 예전과 달리 큰아들을 비롯한 자녀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놨다.
“큰아드님이 스물한 살이면 대학에 다니겠어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우리 큰아들은 대학에 안 다녀요. 장애가 좀 있거든요. 특수학교만 졸업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은 제게 축복이고 우리 집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천사랍니다(호호).”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기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조지프가 태어난 일, 장애를 알고 난 뒤 힘들었던 이야기, 아홉 살 때 물에 빠졌다 살아난 이후 나의 변화 등을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음악회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헌데 다음날 신문기사를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음악회 홍보가 나왔어야 할 그 신문에는 나와 조지프의 이야기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게 아닌가. 기자가 그저 개인적으로 궁금해 물어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가족의 이야기가 간증문처럼 실렸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자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분이 조지프의 이야기가 다른 가족들에게 누가 되진 않겠느냐는 걱정의 전화를 했다. 나는 당시 누나를 늘 따뜻하게 대해주고 영적 안내까지 해 주던, 미국 LA에서 목회를 하는 막냇동생 이규섭(현재 뉴욕 퀸스한인교회 담임)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 조지프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내 물음에 동생은 대뜸 이렇게 답했다.
“누나, 나는 정말 기뻐.”
“응? 기쁘다고?”
“신문에 그런 내용이 나왔다는 건 누나가 이제 조지프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그건 누나의 상처가 많이 치유됐다는 거잖아. 난 그게 정말 기뻐. 누나 참 잘했어.”
힘이 좀 생겼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공개된 조지프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어 모르는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문을 보고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는 상대방은 밴쿠버로 이민을 와 자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였다.
“많이 힘드시죠. 우리 만나서 얘기합시다.”
그렇게 해서 기사가 나오고 전화를 주신 그분과 또 다른 두 분의 한국 엄마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20여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로 자폐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만나자마자 우리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헌데 신비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누군가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거기에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를 서로 금세 알아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만날 땐 몇 사람이 더 합류했고, 그 다음엔 또 몇 사람이 추가됐다. 그러다가 그 모임은 1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는 ‘베데스다 어머니회’로 발전했다. 장애우 이민가정을 섬기는 어머니들의 모임으로 1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성자 (11) 자폐증 자녀 둔 엄마들의 ‘베데스다 어머니회’
입력 2014-12-08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