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 경정은 휴가 중이던 지난 2일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과 부하직원 유모 경장에게 전화해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일부 파일을 삭제토록 했다. 이튿날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삭제 흔적이 확인됐다. 일부는 현장에서 복구프로그램을 통해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삭제된 전체 분량을 되살리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작업 중이다.
경찰의 통상적인 ‘견문보고’와 달리 일선 정보 경찰의 정보보고는 국가경찰정보시스템(NPIS)을 통해 상급기관에 전달된다. NPIS 양식대로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정리한 뒤 한글파일 등으로 더 자세히 작성한 보고서를 첨부하면 실시간 전송되는 방식이다. 자신의 보고서가 아니라도 정보 경찰들은 대부분 열람할 수 있다. 다만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실 보고서는 별도로 보고된다.
복수의 사정 당국 관계자는 5일 박 경정 컴퓨터에서 삭제된 파일에는 판·검사 동향 첩보가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법조인 비위에 관한 보고서를 쓰기 위해 모아뒀던 자료를 유 경장을 시켜 삭제했다는 것이다. 당시 박 경정은 언론의 관심을 피해 휴가를 낸 터여서 사무실에 나오기 어려웠다. NPIS로 전송되기 전인 문서 파일을 주로 삭제했고 이미 상부에 보고된 내용도 일부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일반 보고서를 가져갔다. (경찰로선) 상당히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부분은 이 첩보의 작성 시점이다. 청와대 근무 시절에 확보해 문서화된 첩보를 어떤 형태로든 갖고 나와 사무실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었다면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 동향’ 문서의 유출 사건과 비슷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검찰 측은 “파일을 복구해 증거 인멸과 관련돼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유 경장을 시켜 삭제한 파일이 ‘증거’에 해당하는 거라면 박 경정에겐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도봉경찰서 발령 이후 작성한 문서라면 정보과장의 통상적인 업무 파일일 수 있다. 주로 관내 법조인의 동향 첩보일 가능성이 크다. 유 경장은 파일을 단순히 윈도에서 지우고 휴지통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적인 삭제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증거 인멸’ 의도라기보다 ‘껄끄러운’ 법조인 첩보가 검찰에 넘어가는 상황을 우려한 행동일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파일을 복원한 뒤 그 내용에 따라 검찰이 ‘법조인 첩보’의 진위 확인에 나서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정이 가급적 검찰에 보여주기 싫은 정보가 있어서 나름 조치를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당일 유 경장을 임의동행해 간단히 조사한 뒤 우거지탕을 한 그릇 사주고 바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국민일보는 박 경정에게 파일 삭제 이유를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靑 정윤회 문건 파문] 증거 인멸 의도? 檢에 넘기기 껄끄러워?
입력 2014-12-06 0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