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윤회 문건 파문] 문건 신빙성·유출경로, ‘제3자’ 실체규명이 열쇠

입력 2014-12-06 04:50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5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친 뒤 입을 굳게 다물고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5일 낮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세계일보 사옥의 출입문 철제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세계일보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출입을 통제했다. 연합뉴스
정윤회(59)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제삼자’의 실체 규명이 핵심 수사과제로 떠올랐다. ‘제삼자’의 존재 여부는 검찰이 두 갈래로 수사 중인 문건의 신빙성, 유출 경로 모두에서 첨예한 쟁점이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문건 작성·유출 과정에서 ‘제삼자’의 개입 및 역할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 측은 ‘제삼자’가 아닌 박관천(48) 경정이 스스로 근거 없는 ‘찌라시’를 만들어 유출했다고 본다. 검찰은 청와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하는 등 실체 파악을 위해 수사력을 기울이고 있다.

◇‘믿을 만한 정보원’ 있었나=조응천(52) 전 비서관은 5일 참고인 신분으로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문건 내용에는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도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 경정이 작성한 ‘정씨 동향보고’ 문건을 윗선으로 올렸다. 언론을 통해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평가했었다.

5일 새벽 4시를 넘긴 시각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박 경정 역시 문건은 허위 사실이 아닌 제삼자로부터 얻은 정보에 기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은 조사 과정에서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고, 정보의 출처도 어느 정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 경정이 문건을 작성할 때 어디서 들었는지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언론에 공개된 문건과 달리 검게 가려진 부분이 없는 ‘원본’에는 정보 출처인 ‘제삼자’가 명기돼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정수석실의 모든 보고서는 대통령이 읽는다는 전제 하에 작성된다. 검찰도 이번 문건 원본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본다. 동향보고 문건이더라도 통상 보고서에 별지를 첨부, 정보 출처를 밝히게끔 돼 있다는 게 청와대를 경험한 인사들의 이야기다.

다만 모임의 참석자로 지목된 이들 가운데 박 경정 측에 정보를 준 ‘내부 제보자’가 있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박 경정이나 조 전 비서관이 아직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 정씨의 주변 인물로부터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출 과정의 ‘제삼자’는 누구=유출 경로를 따지는 과정에서도 제삼자의 개입 여부가 ‘열쇠’다. 청와대는 문건을 작성한 박 경정을 유출 장본인으로 지목해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어쩌면 같은 이로 밝혀질 수도 있는 제삼자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박 경정은 도난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5∼6월 민정에 올라간 한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삼자가 (문건 유출의)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건 유출 과정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를 펼치고 있다. 검찰은 4일 청와대로부터 수사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에는 도난 여부를 밝힐 청와대 CCTV 자료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삼자 존재·개입 여부를 밝히기 위한 검찰의 다음 행보는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사실이라고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수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세계일보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5일 사정 당국과 언론계에 퍼지기도 했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사측 소집 명령에 따라 오전부터 서울 종로구 사옥으로 집결했고, 현관 셔터를 내린 채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다. 박종현 기자협회 세계일보지부장은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판단에 따라 기자들이 비상 대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압수수색 시도 등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이 임박했거나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듯한 내용의 얘기들은 검찰 수사를 음해하는 세력이 유포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경원 강창욱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