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윤회 문건’의 명예훼손 수사에서 문건의 신빙성 여부로 범위를 한정해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농단이나 인사개입 등 ‘비선 라인’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파헤치는 수준까지 수사가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공개된 A4용지 2장 분량의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에는 정윤회씨가 지난해 10월 이후 박근혜 대통령 측근 비서관 ‘3인방’ 등 청와대 내외부 인사들과 정기 모임을 갖고 국정운영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검찰은 이런 회동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따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10인 정기모임’의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나면 당시 자리에서 논의됐다는 내용도 추가 수사 없이 ‘허위’로 결론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모임이 없었으니 국정개입이라는 의혹도 사라지는 셈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문건 내용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검찰 관계자는 5일 “문건은 감찰보고서라든지 객관적 ‘팩트(사실)’가 아닌 동향 보고”라며 “조금 더 나가면 우리가 속칭 말하는 ‘찌라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이 제대로 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생산됐다는 전제 아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현실적으로 모임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에도 여러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문건에서 소위 ‘십상시(十常侍)’로 거론된 이들이 하나같이 모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연락책’ 역할을 했다고 문건에 적힌 김춘식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산하 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은 4일 검찰에 나와 “문제의 식당에는 가본 적도 없고, 정씨 얼굴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문건에 등장한 서울 강남의 J중식당을 압수수색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몇 개월간의 상황을 녹화한 CCTV 영상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 식당 직원은 “검찰이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던데 우리 식당은 3개월치 명단만 보관하고, 그 이전 것은 폐기한다”고 말했다. 식당 사장도 검찰에 나와 “그런 모임은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J식당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단서 확보에 실패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대신 검찰은 정씨 등 주요 관련자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당시 송수신 기지국 정보를 확인하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검찰 수사에서 문건 내용과 유사한 성격의 모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 문건 내용의 신빙성도 높아진다. 다만 비밀회동에서 ‘VIP(대통령)의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 상황 체크’나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 유포 지시’ 등이 실제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전적으로 참석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이나 수사 실효성 등을 감안해 검찰이 속전속결로 수사를 마무리 짓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 검찰 간부는 “역대 정권마다 실세 논란이 있었고 구속도 됐지만, 이번에 정윤회씨는 아직 범죄 혐의점이 없지 않나”고 말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
[‘靑 정윤회 문건’ 파문] 檢, 문건 신빙성만 따지고 덮나
입력 2014-12-06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