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내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당장 “거참, 올드하군.” 이런 얘기를 들을 거 같다. 틀린 말도 아니다. 신문사에서 배달되는 책을 보는 게 일과다. 문화체육부 출판담당. 편집국 끄트머리 내 자리엔 신문들이 수북하고 책들이 사방에 쌓여 있다. 그 종이더미 속에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써낸다.
신문과 출판, 디지털 시대에 패퇴하는 두 종이산업을 한자리에서 지켜보며 한 해를 보냈다. 격한 한숨이 쌍으로 터져 나오는 곳이니 마음 편할 리 없다. 인근 신도시로 주민들이 다 빠져나간 구도심의 낡은 거리를 헤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책들은 요즘 어떠냐고 누군가 안부를 묻는다면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신문은? 잘 모르겠다.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둘러싼 지배적인 이야기는 위기론이었고 비관론이었다. 누군가는 책이 한국에서 그런 상태로 지내온 지 2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책의 종말’이 퍼지기 시작한 건 아마 10년도 더 됐을 것이다. 어떤 수치를 봐도 책의 상태가 나아졌다고 볼 근거는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직 수치에 잡히지 않는, 새로 등장하는 현상들을 보면 활기 같은 걸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근래 늘어나는 편집서점과 독서클럽은 책의 운명에 대한 아주 다른 가능성을 품게 해준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순수 서점 숫자는 2003년 2247개에서 2013년 1625개로 줄었다. 2011년 1752개였으니까 최근 2년 사이에도 127개 서점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러나 서점을 새로 여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10년 정도를 비교할 때 요즘처럼 서점 창업이 활기를 띤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홍대 앞의 ‘땡스북스’나 ‘유어마인드’, 대학로의 ‘책방이음’, 상암동의 ‘북바이북’ 같은 서점들은 짧은 시간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서점들은 주인들이 뚜렷한 취향과 주제, 개성을 가지고 서가를 구성한다. 기존 서점과 구별하기 위해 ‘편집서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서점들은 같은 취향과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들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전시나 강연, 소규모 축제 등을 열고, 지역 문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여행, 그림책, 독립잡지, 사진, 디자인 등으로 전문화된 서점들도 생겨나고 있다. 편집서점과 전문서점은 지방 중소도시로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가 서점을 하겠다고 하면 뜯어 말리는 게 상식이었다. 서점을 여는 건 치킨집을 여는 것보다 더 무모한 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요즘 변했다. 서점에 대해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서점은 지금 카페보다 더 모던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어쩌면 ‘서점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독서클럽 열풍도 심상치 않다. 책을 안 읽는다고 난리지만, 어디선가 독서클럽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도서관마다 동네마다 독서클럽 만들기가 유행이고, 주부는 물론 직장인들과 노인들까지 몰린다. ‘이제는 함께 읽기다’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등 독서토론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숭례문학당이나 땡땡책협동조합 같은 독서토론 단체도 늘어난다. 학교나 기업, 군대에서도 독서토론 바람이 불고 있다.
왜 인기인가 했더니 지난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한 서평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우리나라 사회학계의 한 원로는 “요즘 어디 가서도 보기 어려운 지식의 향연을 경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숫자로만 따지면 독서인구의 감소는 명백한지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독서인구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독서는 지금 고독하고 낡은 취미에서 매력적인 ‘함께 읽기’로 진화하고 있다. 어느 독서클럽에 나가세요? 이런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희망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집서점과 독서클럽이 책에 대한 아주 오래된 비관론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가장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애정을 버릴 수 없어 책의 세계로 뛰어든 이들은 젊은 애서가들이었다. 지금도 출판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다. 잡지를 새로 창간하는 이들도 여전히 멸종되지 않았다. 유어마인드 같은 서점에 가보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잡지가 나오고 있는지 놀라게 된다.
사람들은 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의미로 사람들과 관계한다. 책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그 점은 또렷이 드러난다. 일본의 출판 저널리스트가 새로 서점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분투를 기록한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시작하게 된 작은 책방. 그런 서점이 1000곳 생긴다면 세상은 바뀔 수도 있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