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TV를 켰다. TV에선 아프리카 빈곤아동을 후원해 달라는 유니세프의 광고가 흘러나온다. 광고 속 굶주린 아이는 자동차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광고를 본 뒤 ‘내가 자동차를 사 주면 저 아이는 행복해질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국제개발구호기구 월드비전에서 국내외 빈곤아동 40명을 후원하는 김정현(31·여)씨다. 올해로 10년차 간호사인 그는 현재 매달 급여의 40%가량을 40명의 아동 후원비로 쓴다. 9월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월드비전 정기 후원자 모임’ 회원들과 5세 이하 아동 후원자 발굴을 위한 거리캠페인을 펼쳤다. 모임의 운영자이기도 한 김씨를 최근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한국본부에서 만났다.
김씨는 2009년 후원을 시작할 당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평범한 간호사’였다. 쳇바퀴 돌 듯 3교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공연히 허무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접한 유니세프 광고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씨는 후원아동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고 가장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구호단체를 꼼꼼히 찾아본 뒤 월드비전을 선택했다.
무기력했던 김씨 삶에 변화가 생긴 건 이때부터다. 그는 첫 후원아동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조나스가 자라는 모습을 편지로 지켜보며 처음으로 나눔의 기쁨을 느꼈다. 편지에는 전기기사가 꿈이라거나 성적이 꽤 올랐다는 내용, 김씨가 보내준 후원금으로 어머니의 수술비를 해결했다는 등 후원아동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해 두 해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아이의 삶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여요. 그저 받는 데 익숙해지지 않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첫 후원아동의 변화는 또 다른 아동을 후원하는 자극제가 됐다. 김씨는 월드비전 캠페인이나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점차 후원아동 수를 늘렸다. 몸이 아프거나 부모가 없어 방치된 아이들을 소개받을 때마다 ‘후원하면 이 아이도 변할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후원아동 수가 5명을 넘길 땐 ‘내가 더 후원할 수 있을까’라며 2박 3일간 고민하기도 했죠. 그래도 결연을 멈출 순 없었어요. 매달 제가 보내는 3만원이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기 때문이죠.” 현재 그는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몽골 등 17개국 39명의 빈곤아동과 국내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1명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아동을 향한 김씨의 애정은 유별나다. 매달 스티커로 꾸민 손편지를 100통 이상 쓰는가 하면 후원아동 사진을 붙인 서류철을 만들어 그간 받은 사진과 편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관리한다. 편지 교류만으로는 모자라 직접 후원아동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2011년과 2013년 자비로 라오스에 다녀온 김씨는 지난달에도 후원자 2명과 함께 3박 4일간 필리핀을 방문해 후원아동을 만났다.
하지만 김씨의 나눔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그는 지금도 “혼자서 그렇게 많이 도우면 어떻게 사느냐”거나 “국내 아동은 왜 돕지 않느냐”는 등의 말을 주변에서 듣고 있다.
“적잖은 이들이 40명을 후원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지만 저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요. 나눔으로 제 삶이 변했고, 행복해졌거든요. 그저 앞만 보고 살던 제가 아이들을 만난 이후부터는 10년 뒤를 기대하게 됐어요. 행복한 마음이 숫자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는 거 같아요.”
최근 그는 ‘월드비전 정기 후원자 모임’이란 직함으로 명함을 만들었다. 자신이 느낀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다. 김씨는 “후원은 연예인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나 같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말까지 각종 모금활동이나 나눔 캠페인에 참여할 계획이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인터뷰] 월드비전서 나눔 실천 김정현 간호사 “매달 봉급 40% 털어 18개국 아동 40명 후원”
입력 2014-12-08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