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의 U, 청색의 O, 모음들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내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랭보의 ‘모음들’이란 시의 앞부분이다. 그는 이 시에서 알파벳 모음을 색으로 비유하고, 모음이 지니는 색깔과 관련된 상황을 묘사했다. 랭보의 눈에는 실제로 A가 검은색으로, I가 붉은색으로 보였다. 그는 알파벳을 볼 때 색을 함께 느끼는 공감각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각 및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5감각이 차별적인 경로를 통해 각각 처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공감각자라 한다. 세계적인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악보 음표를 색으로 인지했다.
공감각자들의 능력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 글자에서 맛을 느끼거나 시각 자극에서 소리를 듣는 공감각자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또한 2005년 네이처지를 통해 소개된 한 스위스 여성의 경우 3개의 감각기관을 연결해 느꼈다. 음악가인 그 여성은 C장조는 빨간색, F장조는 보라색으로 느끼며, 3도 장음에서는 단맛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약 0.5∼1%가 공감각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희귀한 탓에 예전엔 정신의학에서 일종의 정신착란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지금도 공감각자들의 능력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인지 아니면 유아 때의 환경적인 영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지 논쟁이 벌어질 만큼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최근 영국 서섹스대학의 연구팀은 공감각 능력이 후천적으로도 발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참가자들에게 9주 동안 특정 문자에 대한 색깔의 연관성을 발달시키는 등의 훈련을 한 결과 대부분이 공감각 능력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훈련 후 공감각자가 된 사람들의 경우 훈련을 받지 않은 그룹에 비해 IQ가 평균 12점이나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공감각을 이용하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원해 정보를 기억하면 뇌의 다양한 부위가 자극되면서 기억이 다양한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소리를 내거나 손으로 쓰면서 하면 더 잘 외워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런데 일시적 훈련만으론 공감각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 서섹스대학의 프로그램에 의해 공감각자가 된 사람들에게 3개월 후 다시 테스트해본 결과 대부분 공감각 능력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공감각자들
입력 2014-12-0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