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교회에 유대주의자들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대교회를 흔드는 두 개의 잘못된 사상이 있었는데 유대주의와 영지주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사상에 대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라고 말할 정도로 단호하고 강경했습니다.
옥에 갇힌 바울은 빌립보교회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22절) 사람이라고 했고,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19∼20절)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25절)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기초는 하나님의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죄를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원뜻은 ‘과녁에서 빗나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뜻이 곧 우리가 향해야 하는 과녁입니다. 그 과녁에서 빗나간 모든 것이 곧 죄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열심히 과녁을 향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함으로써 전혀 엉뚱한 방향, 때로는 정반대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그럴 때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과 의도대로 세상은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언제나 사랑과 창조입니다. 둘째, 세상일을 아무리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원인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오직 복음을 전합니다. 옥에 갇힌 것도, 빌립보교회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도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세워 빌립보 교인들이 올바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디모데를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진실’입니다, 헬라어로 ‘에일리크리네이스’인 진실의 원뜻은 ‘완전무결한 태양빛으로 시험하다’입니다.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경쟁력, 외모, 재산과 배경, 학벌….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이 최고의 병기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빛 아래서 ‘나는 왜 이것을 원하며, 어떤 의도로 이 일을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의도와 목적도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빛 아래에선 밝히 드러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진실한지를 따져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향해 ‘너는 진실한가’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다른 말로 하면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때 비로소 진실할 수 있습니다. 진실해야 나를 살릴 수 있고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진실할 때만이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는 곳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신우인 목사(포이에마예수교회)
[오늘의 설교] 최종병기 진실
입력 2014-12-06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