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윤회 문건’ 파문] 집권 2년차에 터진 누수현상… 고민에 빠진 朴대통령

입력 2014-12-05 03:41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가고 있다. 오랜 측근인 정씨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등이 거론된 의혹이 계속 커질 경우 사건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고심…‘공직기강’ 강조해 왔는데=박 대통령은 4일 아무런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청와대에 머물렀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11∼12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ASEAN)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는 10개국 정상과 회담하는 만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불편한 심경으로 문제의 문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에 대한 상황 점검과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오랜 측근이던 정씨와 핵심 비서 3인방은 물론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끊임없이 세간에 거론되면서 의혹이 재생산되고 있는 탓이다.

특히 그동안 자신이 누누이 강조해온 공직기강 확립과 공직사회 개혁의 모범이 돼야 할 청와대가 오히려 내부 갈등과 권력다툼의 본산으로 비쳐지는 데 대한 우려도 작용한 듯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는데도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인터뷰를 통해 “본질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며 박 대통령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이어지는 와중에 집권 3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상당부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올 하반기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로 부각됐던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 문제는 현재 여야 정치권 어디서도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못하면 박 대통령이 그동안 수없이 강조해온 국정과제 이행의 ‘골든타임’은 사라져 버릴 것이란 위기감마저 감돈다.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 모두 검찰로=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과 문건에 언급된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의 검찰 소환에 이어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금명간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검찰 소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직 참모들은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긴 하지만, 재직 중 권력다툼 의혹에 거론됐다는 것 자체가 큰 타격이다.

또 조 전 비서관과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전직 수석과 전현직 비서관, 전현직 행정관들이 대거 검찰에 출두하는 모양새로, 역대 정부의 2년차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인 셈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 의혹이 박근혜정부 출범 전반기에 터진 게 다행이란 시각도 있다. 이번 사건을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의 인적 쇄신을 통해 정국을 정면 돌파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요청도 존재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관련 의혹들은 어차피 한번쯤은 터지게 돼 있었는데, 그나마 2년차에 터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스캔들이 벌어졌다면 손쓸 새도 없이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바로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